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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04. 2021

임원의 자격

싱가포르 있을 때 회사 사람들과 금요일 밤이나 주말에 함께 테니스 플레이를 하는 일상을 가진 적이 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한 분을 중심으로 몇몇이 모여 체력 증진과 화합 도모를 목적으로 가벼운 마음의 경기를 했다. 경기가 끝나면 굿 게임을 외치고 다음에 또 봐요 하면서 쿨하게 헤어졌었다. 어느 날 우리끼리만 치는 것이 좀 그랬는지 한 직원이 임원에게 '같이 하실래요' 물어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같이 조인하게 된 것이다. 임원이 함께하는 운동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 어쨌든 대화나 평소 생활하는 것을 통해 한 사람의 성격과 캐릭터를 파악하게 되는데, 같이 운동을 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본의 아니게 2명의 임원과 테니스 게임을 통해 알게된 그들의 특징.


-함께 해야 즐겁고 빨리 헤어지면 섭하지.

앞서 말한 것처럼 임원이 함께 하기 전에는 게임 후 바로 헤어졌다면, 그분이 오신 뒤로는 늘 회식이 뒤따랐다. 회식이라고 해야 근처 호커센터에서 맥주와 다양한 안주 시켜놓고 두어 시간 수다떠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일단 다 같이 운동했으면 같이 모여서 밥이든 술이든 함께 해야 완성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테니스 전에는 더 많은 인원이 한 때 풋살을 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 그 더위에, 호텔 옥상에 설치된 야외 풋살장임을 잊지 말자). 풋살 이후 단체 회식은 당연한 코스였다. 

예전에 CTO님이 산을 좋아해서 매주 팀장을 비롯한 여러 임원들이 산행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혼자서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취미 같긴 하지만, 이 좋은 걸 혼자만 하기엔 아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운동은 역시 단체 운동이 최고인 듯.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승부는 중요해.

경기가 끝나면 그날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팀(복식으로만 했으므로)이 저녁 간식비를 나눠 내곤 했다. 사실 처음부터 내기가 시작된 건 아니었다. 역시 그분이 오시고 생긴 새로운 제도였다. 그냥 치면 무슨 재미냐는 것이다. 조 구성은 경기마다 달리 했는데 같이 플레이 할 때 승부에 도움이 되는 친구와 조가 되면 기쁜 속내를 감추지 않으시던 기억이 있다. 급여를 적지 않게 버는 분이니 게임비가 아까워서는 아니었을 것 같고, 그냥 승부에 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으로 느껴졌다.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 보다는 우선 이겨야 한다는 것이 더 눈에 띄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땐 약간의 trash talk (NBA의 수준은 아니고, 일본어로 소위 '겐세이'라고 부르는)이 있는 경우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직원들과 꼭 그렇게 승부에서 본인의 승리를 가져가고 싶었을까 싶기도 하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두 분의 임원이 같은 상황에서 모두 동일한 행동을 한 것이라 뇌리에 강하게 박힌 사례.

싱가포르는 시시때때로 비가 오다가 그치곤 한다. 잠깐 소나기 내리듯 사라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꽤 오랜 시간 내릴 때가 있다. 어떤 경우든 단시간에 쏟아지는 비의 양은 적지 않아서 테니스장을 흠뻑 적시기 마련이다. 공은 젖어서 무거워지고 반발력도 떨어질 뿐 아니라, 코트 자체도 미끄러워지므로 자칫 부상 당하기 쉽다.


코트를 빌린 시간이 되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들 오늘은 좀 어렵겠네 이런 생각이었는데 A 상무님이 이미 젖은 코트 바닥을 밀대로 계속 밀면서 플레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뭐지? 왜 저러시지? 의아함을 가지고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째야 하나 이러고 있었다. 결국 한 삼사십 분 지났을까. 비는 그쳤고 바닥은 젖었지만 우리는 그날 끝까지 테니스를 쳤다.

이번엔 A 상무님 후임으로 오신 다른 임원과의 에피소드. 플레이를 시작하는데 예기치 않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오는 줄 알았는데 점점 빗줄기가 세졌다. 이쯤이면 게임을 중단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만 임원이 너무 열심히 하시는 덕에 모두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결국 비가 그치고 그날도 모든 게임을 무사히 마쳤다는 결론.


그런 사람이 임원이 될까, 아니면 성격도 길러지는 걸까

회사 생활의 별이라는 임원.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경쟁에서 늘 이길 수는 없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지고 좌절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임원의 자리를 꿰찬것은 최소한 십 몇년의 경쟁 구도 안에서 최고의 자리를 가졌음을 말한다. 싸움의 전장은 조직 안팎 모두일 터. 전쟁에서 이겨 승리의 성과를 가져다 준 것은 다분히 99%의 노력 때문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어땠을지 내가 얼마나 알고 이해하겠는가 마는, 그런 경험과 경력이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배어있지 않을까 짐작은 가능하다. 그런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함께 지내면서 보여지는 하나 하나의 작은 모습들이다.

함께 운동을 하면서 관찰한 서로 다른 캐릭터의 임원을 분석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개인적인 성격은 완전 다른 분들인데 운동 경기라는 하나의 목표 앞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비슷해서 놀랍고 신기했다. 원래 승부사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조직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춰가며 완성된 자세일 수도 있지 싶다. 그 안에서 성장하고 경쟁하고 결국 선택 받은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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