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 아니었다니.

by nay

'이만하면 괜찮은 리더 아닌가'

문득 회사 화장실에서 떠오른 것. 왜 이런 생각은 화장실에 있을 때 유독 몽글거리며 생겨나는지 항상 궁금하다. '이만하면'이란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지, 괜찮은 리더란 또 어떤 사람인지 명쾌하게 정의 내리지도 않았건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런 걸 근자감이라고 부른다지 (근본 없는 자신감). 왜 갑자기 였는지 찬찬히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는 중이었단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아가는 현재라는 생각은 회사가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묻어난다.

직업도 있고,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또... 그래, 남들은 내지 못한 책도 한 권 낸 이력이 있고. 또 뭐더라. 곰곰이 다시 보니 이 정도의 삶을 정의하는 많은 내용 중에 정신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 돈, 차, 집. 이런 것들이 잣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까지는 아니지만 그것이 갖는 무게마저 훌훌 벗어던질 사람은 아니다.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것을 해결해 가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가에는 꽃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어요"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도 못한다.
"1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
이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멋진 집이겠구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른이 바로 나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 정도의 삶이면 만족스러운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남들만큼 사는 것은 참을 수 없고,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상승의 욕구를 좇는다. 잘 산다는 말은 곧 돈이 많고, 집도 몇 채 있고, 상가도 있으면 좋고, 해외여행도 매년 꼬박 나가줘야 하는 정도를 말한다. 더 좋게는 직업에 매달려 돈 버는 삶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투자 대박으로 편하게 사는 그런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정신적 성숙함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 되었다. 올 초만 해도 코인을 하지 않아 '벼락 거지'가 되었다는 웃픈 말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고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겠다는 FIRE족을 동경하는 지금을 깨달을 때마다 이대로 만족하며 살다가 큰 일 나는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요즘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자기 계발서도 틈틈이 보지만 예전과 달리 소설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다룬 이야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더 간다. 나이가 들면서 물질적 고픔보다 정서적 고픔이 더 커진 까닭일까. 그런데 한가롭게 그런 때가 아닌가 싶어 진다. 그 시간에 경제서적, 투자서를 섭렵하고 부동산과 주식 유튜브를 봐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 한창 수입이 있을 때가 투자의 적기인데. 이 사람아 정신 차리게.


그러니 이만하면 잘 산다고 믿어 온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남들은 다 하나씩 월세 받으며 산다더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체 그런 '남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 특히 아내가 진지하게 그런 얘기를 들려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조급해진다. 서글퍼진다. 자존감이 내려간다. 제발 그런 분들은 자꾸 어디 카페에 자기 자랑 좀 안 써주면 좋겠다. 그래야 상대적 박탈감이라도 덜 느끼고 '이 정도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결국 자기만족이 더 중요하다. 남과 비교하기 전에 온전히 홀로 괜찮은 사람이 아름다운 법이다. 지금의 우리가 서글픈 이유는 자꾸 순위를 매기고 남들과 비교해서 자기 삶의 가치를 낮게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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