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같은 사람"
밤 11시가 넘어서 아내에게 그만 자러 가자고 했더니 그녀 입에서 나온 말.
11시가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잠자리에 든다. 티비 시청을 하던 도중이라고 해도 그냥 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함께 시청을 하던 아내는 입이 댓 자로 나온다. 이게 무슨 경우냐, 어쩜 그렇게 냉정하냐며 'AI 같다’고 한다. 설득하다가 혼자 자러 가면 '잘 자요 AI' 이런다.
아침에는 유산균을 먹는다. 비타민을 비롯해 영양제는 먹다 안 먹다 하는 편인데 유독 유산균은 꾸준히 먹게 되었다. 아내가 효험을 봤다며 정말 좋다기에 챙겨주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식사 전에 먹어야 효과가 제일이라고 해서 출근 준비 중인 아내에게 물과 함께 가져다준다. 고마워하는 그녀는 이번에도 ‘참 AI 같은 사람’, 이런다.
예전 같으면 로봇 같다고 했을 텐데, 요즘은 로봇이라는 말 대신 AI가 더 일반화된 까닭일 게다. 감정은 배제하고 흐트러짐 없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그런 뜻이라면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걸 나쁘게 말하면 사람 냄새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 냄새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필요한 것을 안 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까먹어서 못하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나는 AI가 맞다.
난 매우 루틴한 삶을 산다. (거의) 정해진 요일이 되면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마른빨래는 부지런히 개어 넣고, 시간이 있으면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저녁 먹으면 잠시 쉬다가 실내 자전거를 탄다.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을 가끔 갔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확 늘어난 상황에는 멀리 하는 편이다. 저녁 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에 일정한 리듬이 깨지기 때문인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남들은 이런 나를 보면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대학생 때 하루는 과외를 가다가 무슨 정신이 팔렸는지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놓친 적이 있다. 그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역에서 내린 후에는 방향을 잘못 알고 출구를 헷갈려서 한참 헤맨 적이 있다. 그 얘기를 선배형에게 했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늘 정확하게 행동하고 틀림이 없던 사람인데 허둥대는 모습이 의외라고 했다. 그걸 보면 20여 년 전에도 난 비슷한 성격이자 남들이 보는 눈도 큰 차이가 없었지 싶다. 타고난 성격도 있지만 후천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규칙과 절차가 필요한 일, 정확도를 따지는 공부와 일 때문에 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반대는 아닐 것이다. 성격도 확증편향 증상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어떤 날은 루틴을 깨고 싶다. 나는 'AI 같은' 사람이지, AI는 아니니까. 실제로 가끔 깨기도 한다. 귀찮아서 할 일을 뒤로 미루면 살짝 일탈(?)의 즐거움이 있다. 다만 어긋난 리듬을 다시 돌리려면 평소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잠깐의 일탈은 편하고 즐겁지만 맘이 그리 편하지 않다. 어차피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밥을 예약해서 앉히고,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부지런히 개고, 밤 11시에 칼 같이 잠드는 것은, 정말로 재미없지만 일정하게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만든다. 특히 집안일은 내가 아니면 아내가 하거나 아들이 하겠지만, 막상 그들에게 돌리자니 불편한 부분이 있을뿐더러 맘에 들지 않는 마무리가 걸린다. 치우라고 한 소리 하기 전에 내가 치우면 될 것인 것을. 앓느니 죽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잠깐 피곤하고 한 번 더 움직여서 해치워 버리면 될 일이다. 건조대에 걸린 수건을 개어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건이 필요할 때 그냥 건조대에서 걷어다 쓰면 그만이다. 굳이 차곡차곡 접어서 화장실에 가져다 두지 않아도 된다.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다니면서 건조대에 걸린 수건이 눈에 띄면 정돈되지 않은 느낌에 기분이 안 좋아질 뿐이다. 그 별로의 기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온 것 같은 기분을 갖지 않기 위해 부단히 개어서 웃장에, 화장실장에 넣어 둔다. 건조대의 가느다란 살들이 드러나 있을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렇게만 쓰면 안사람이 너무 게으른 사람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집안일에만) 느긋한 것뿐이다. 이 사람도 급한 성격이긴 한데 카테고리가 전혀 다르다. 아내는 여행을 간다면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등등을 빨리 결정해야 한다. 주말에는 가만히 있는 꼴을 참지 못한다. 그나마 나랑 살면서 약간 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부지런하고 때로는 AI 같은 면이 돌출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의 패턴들이 너무 공고해져서 때로는 당연히 누군가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생긴다.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버리겠지, 그 사람의 일이니까. 루틴 때문에 내가 왜?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당위성을 잃어버릴까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랬다.
그러므로 육체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인 에너지까지 소비하면서 루틴을 지키는 것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데 요즘 나는 세상을 사는 것이 참 재미없다. 로봇같이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회사를 가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자는 그런 생활은 단순한 만큼 큰 위험이 없으면서 재미 또한 없다. 예전에는 뭐라도 지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었다. 지금은 뭘 사들이는 것에 큰 흥미가 없다. 이런 건조한 삶이야말로 더 큰 일탈을 부르는 위험 요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찾아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루틴을 버리는 작은 일탈의 시도!
그래서 요즘은 아들의 방은 청소를 잘 안 해주고(특히 책상 정리! 어쩜 나와 완전히 다른 인간일까), 현관 앞 널브러진 신발들을 못 본 척 지나가기도 한다. 분리수거가 귀찮아서 다음 기회로 미룬 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 잠은 11시에 잔다. 다 마른빨래도 포기하지 못했다. 어쨌든 혼자만의 약속과 루틴을 조금 느슨하게 해도 (당연하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여전히 AI 같은 정확함이 심신에 훨씬 익숙하지만 살짝 텐션을 낮추는 마음 가짐을 갖기로 다시 다짐해 본다. 나는 AI 같은 ‘사람’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