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모 조직의 상무님이 영면하셨다. 평소에 기저 질환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다. 알고 있는 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대로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입원을 했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향년 마흔아홉. 나 보다 고작 두 살 많은 나이. 회사를 위해서도, 아니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살아가면서 행복을 즐기기에 많은 나날이 남아있는 나이. 나는 감히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릴 자신이 없다.
상무라는 자리에 계셨으니 이름만 몇 번 들었을 뿐 사실 일면식도 없다. 그럼에도 소식을 들은 그날은 조금은 멍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30대에는 주로 친구들을 비롯하여 회사 동기들의 결혼식 소식이 늘 있었다. 언제 결혼한다더라, 그다음엔 출산 소식, 취직과 이직..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의 대부분이었다. 마흔이 넘은 이후엔 주로 부고가 연락의 이유가 되었다. 누군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들의 부고도 잦아졌다.
부고 소식이 새삼스럽지 않음에도 유달리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은 아마 비슷한 연배의, 그것도 회사 사람 본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간혹 게시판에 올라오는 본인상 이야기를 보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곤 하였다. 어쩌다 돌아가셨을까, 참 세상살이 허망하다 싶어지는 것이다.
티비에서 언젠가 어떤 카드회사의 사원이 자기 자리에 붙여놓은 좌우명을 보고 크게 공감한 바 있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이동수)
그의 이런 생각은 결코 염세적이지 않다. 언젠가 잘리니까, 우리는 죽고 마니까 오늘 마음이 가는 대로 가장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런 그가 멋있다고 느꼈었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으니까 더더욱 그랬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언제 죽을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뿐. 허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지금 당장을 사랑하자. 누구 말마따나 '잘 놀다 간다', 이런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