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언제나 옳다.

by nay

네비게이션, 엄마, 아내.

이 3가지의 공통점은? 일생이 편하려면 남자가 따라야 할 세 여자의 말이란다.


어머니 수술 후에 코로나로 내내 변변한 병문안 한 번 못 갔다. 얼마 전 퇴원으로 마침내 주말을 맞아 찾아 뵙기로 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오랜 시간 머물지 않기로 했다. 4인 이상 모이면 안되는 것 아니냐는 어린이(아들)의 걱정도 덜 겸, 아들 가족 왔다고 이것저것 차리실까 부담 드리기도 싫어서 점심 전에 뵙고 돌아오기로 하였다.


주말의 짧은 나들이를 준비하며 아내는 며칠 전부터 분주히 검색 중이었다. 뭐해? 물으니 이번에 시댁 갔다가 평소에 비해 좀 일찍 떠나는 것이니 근처에서 뭔가 해볼 것을 찾는단다. 평소 부모님댁을 찾으면 집 안에만 있다가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평소 자주 뵙지 못하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고속도로 막히기 전에 돌아갈 시간이 되곤 하는 것이 일쑤다. 명절에는 하루 잠을 청하니 시간이 많은 편이지만, 명절이란 특수성 때문에 집안 일이 더 많아서 어디 나갈 엄두도 못내곤 했다. 이것저것 싸주시는 음식 상할까 다른 곳에 들리지 못하는 것도 이유였다.


이번에는 잠깐 있다가 오는 터라 점심 먹을 곳부터 시작해서 관광 코스를 짰나 보다. 잠들기 전, 내일 모두 운동화 신고 가자고 한다. 뭐 해야 하나 보네, 이러니까 그렇다고 끄덕끄덕. 근처 소금산 출렁다리를 한 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들은 적은 있는데 그게 집 근처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어머니 얼굴을 뵈니 걱정보다 훨씬 밝다. 마음이 놓였다. 여든이 다 되신 나이에 전신마취 수술을 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도통 상상이 어렵다. 아직 완전히 나으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편한 얼굴을 보여주셔서 기뻤다.


예정대로 일찍 떠나 아내가 이미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알려주어 초행이지만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역시 말을 잘 들으면 어디든 찾아간다. 식당엔 손님이 한가득이다. 먹기도 전에 맛집이란 기대감이 올라왔다. 음식을 먹어보니 과연 그렇다. 아들도 한그릇 뚝딱 금방 비웠다. 아내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결혼하고 시댁와서 처음 외식이네"

아니, 그렇지는 않아, 여보. 첫 외식은 아니지. 우리 가족끼리 시댁 근처에서 따로 밥을 먹은 건 처음이 맞다. 부모님 입장에선 아들 가족 왔으니 집 밥 먹여서 보내고 싶은 마음인 것은 당연한 것. 그러다보니 외식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만으로도 아내는 기분이 좋은가 보다. 시댁 방문의 루틴을 깨니 그것으로도 기분이 업된 모양이었다.


중간에 식당에서 밖을 보니 날씨가 우중충하였다. 외식으로 이미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겠다, 살짝 귀찮은 탓에 짐짓 날씨 탓을 슬쩍 대며 '좀 흐린데? (가지 말자)'하고 작은 반항을 해 보았다. 이미 정보를 들었는데 출렁다리를 가려면 500계단을 올라야 한단다. 아들도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는 비슷한 과라서 외출 보다는 집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의 단호한 거부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음 코스로 향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도착. 그런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한 개만 챙겨 와서 어쩌나 싶었는데 우연하게도 차에 여분이 있지 않은가. 도무지 올라가지 않을 핑계가 없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만 남았을 뿐이다. 막상 가보니 정확하게는 578계단이라고 하였다. 어쩐지 속은 기분. 계단의 시작점까지 걸어가는 도중 다행히 비가 그쳤다. 계단을 타기 시작했다. 막판에 조금 땀이 났지만 숨이 좀 찰 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등산을 해보니 과정의 고단함을 정상에서 항상 잊는다. 드디어 마주한 출렁다리.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와보니 참 좋았다. 토요일엔 게임 시간 때문에 마음이 콩밭에 가있던 아들 녀석도 그저 좋다고 하였다. 대신 출렁다리가 기대보다 안 출렁거려서 실망이라나. 나는 오금이 저린데 말이다. 하지만 내려다 보는 풍경과 때마침 내려준 짧은 비 덕분에 시원한 산바람이 정말 상쾌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시댁 근처에 있는데 왜 여태 안찾아 왔나 모르겠다는 아내 말에 또 한 번 미안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대뜸, '거 봐 내 말 듣기 잘했지?' 이런다. 아들과 나는 뭐 할 말이 없다.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조금 우중충 하다고 발길을 돌렸다면 이렇게 멋진 풍경과 자연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약간의 귀찮음으로 잠깐 회피해 보려던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비단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집돌이 남편과 아들 데리고 나가서 활동 시키느라 아내가 고생이다. 호수공원 산책시키랴, 아들 자전거 태우랴, 가족 운동 하랴.. 물론 또 우리가 대놓고 반항하거나 말을 거역하는 편은 아니라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이 답답해 하긴 한다.


아내 말 따라서 손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추진력이 좋다. 최근 카카오뱅크 주식 청약만 해도 그렇다. 핫한 종목인건 알았지만 시큰둥한 나를 부추겨 계좌개설부터 청약까지 일사천리.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봤으니 잘된 일이다. 싱가포르 살 때도 그랬다. 시간적 여유 있다고 천천히 여행할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주변을 다니자던 걸 가끔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전세계 여행이 이렇게 막힐 줄 누가 알았으랴. 코로나가 스멀스멀 시작될 즈음 마지막으로 다녀온 푸켓이 끝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그때도 나는 살짝 반대했으나 아내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다녀온 것이 결국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아내의 추진을 반대했으면 해외 생활에서 많은 추억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주말에 집돌이 기질이 발동하여 어디 널부러져 있을라치면, 벌써 괜찮은 까페나 맛집을 다 검색해 둔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하루가 만들어지곤 하였다. 괜히 말 안듣고 꾸물거렸다간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하니 나쁜 짓(?)이 아니면 괜히 반항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나는 이미 그녀에게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몰라.


그러니 오늘의 교훈. 길에 나서면 주로 네비게이션을 거역하지 말 것이고, 클 때는 어머니 말씀 잘 듣는 아들이 좋다. 물론 결혼 후에는 아내의 말을 잠자코 따르자. 그녀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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