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주문한 꽃이 늦은 밤 문 앞에 놓였다
집에 있는 꽃병을 모두 꺼내 해보는 서툰 꽃꽂이
남이 해 놓은 것 볼 줄만 알았지
내 손으로 해보려니 영 이상하다
씻고 나온 아내가 하는 말, 소질 있네
내 맘에는 안 들어도
당신 좋다니 괜찮아 보이고
몰랐던 소질이 이제야 나타난 건가
우리 집까지 오며 시든 너희들, 촉촉하게 물 먹고 밤 사이에 활짝 살아나렴
소박하게 빛났던 그들은
무작정 찾아든 찬 바람에 지쳤는지 금세 시들고
잎은 더 빨리 말라버려
그 며칠 식탁 위에서, 거실 창가 앞에서, 안방 침대 옆에서 고마웠다
왜 버리지 않느냐고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꽃병 주위로 떨어진 한 잎, 두 잎.
축 쳐진 모가지여
허겁지겁 덜 시든 아이들을 솎아가며
다시 한 묶음 모아 본다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취해 본다
얼추 한 단이 그럴듯하다
아직 괜찮은 줄기 위의 꽃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며
버리지 않았음에 감사하듯
쓸모를 찾아주어 고마워하듯
다시금 식탁 위에서, 거실 창가 앞에서 빛나는 순간이
오히려 나를 꾸짖듯 위로하는
고요한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