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꽃

by nay

아내가 주문한 꽃이 늦은 밤 문 앞에 놓였다

집에 있는 꽃병을 모두 꺼내 해보는 서툰 꽃꽂이

남이 해 놓은 것 볼 줄만 알았지

내 손으로 해보려니 영 이상하다

씻고 나온 아내가 하는 말, 소질 있네

내 맘에는 안 들어도

당신 좋다니 괜찮아 보이고

몰랐던 소질이 이제야 나타난 건가

우리 집까지 오며 시든 너희들, 촉촉하게 물 먹고 밤 사이에 활짝 살아나렴


소박하게 빛났던 그들은

무작정 찾아든 찬 바람에 지쳤는지 금세 시들고

잎은 더 빨리 말라버려

그 며칠 식탁 위에서, 거실 창가 앞에서, 안방 침대 옆에서 고마웠다

왜 버리지 않느냐고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꽃병 주위로 떨어진 한 잎, 두 잎.

축 쳐진 모가지여


허겁지겁 덜 시든 아이들을 솎아가며

다시 한 묶음 모아 본다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취해 본다

얼추 한 단이 그럴듯하다


아직 괜찮은 줄기 위의 꽃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며

버리지 않았음에 감사하듯

쓸모를 찾아주어 고마워하듯

다시금 식탁 위에서, 거실 창가 앞에서 빛나는 순간이

오히려 나를 꾸짖듯 위로하는

고요한 가을밤.


IMG_000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 아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