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고 얼마 안 되어 국내 리조트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호텔이나 리조트라면 사죽을 못쓰는, 한창 들떠서 갔던 아들 녀석의 입이 대짜로 나왔다. 리조트가 후져서 별로라나. 아내와 나는 기가 차서 배부른 소리 한다, 한 번 청소년 수련원 같은데 가봐야 할 것이라고 대꾸를 했었다. 녀석의 본격적인 기억은 아무래도 싱가포르 생활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일급 호텔 위주로 여행을 가고 럭셔리 라이프를 경험하게 만든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적으로 초라한 국내 리조트의 모습과 룸 컨디션을 보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수밖에.
아들의 성장을 보며 난 이 친구의 삶이 가끔 부럽다(진심이다). 지금 사는 집에는 아들의 방이 근사하게 꾸며져 있다. 누나와 형의 것을 물려받으며 자라야 했던 나와 달리 외동아들은 모든 것이 그를 위해 구입한 것들이다. 하루는 침대에 누워, 야 나도 너처럼 어렸을 때 이런 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다. 부모님을 잘못 만나 고생 없이 무난히 잘 컸다고 생각하면서도 같은 나이에 내가 갖지 못했던 환경을 가진 아들. 그저 전혀 다른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일생을 보내는 중이다. 당신들의 삶이나 생각, 기대와 다를 수 있는 - 다를 수밖에 없는 - 내 삶은 어쩌다 이런 길을 걷게 된 것일까.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지까지 삶의 궤적이 그저 새롭게 나를 각성시켜준다.
싱가포르에서 어느 날. 언제나처럼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십 대 시절에, 아니 20대 시절에라도 내가 감히 가족들과 해외에서 이렇게 살아볼 줄 알았을까? 누군가는 원대한 목표 의식을 두고 자신의 삶을 계속 관리하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서 그냥 되는대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하루하루를 채워간 것이 사실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시절에는 교수님이 미국에 있는 교수와 교환학생 제도를 운영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지원했었고, 동기가 있었지만 운이 좋아 나에게 1년의 미국 생활 기회가 있었다. 회사에 취직해서 20여 년을 연구직에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주재원 후보가 되어 거의 될 뻔했다가 상황이 급변해서 포기했었는데 몇 년 뒤 운 좋게 결국 그 자리에 가면서 '욕심부린다고' 되는 것도, 포기했다고 끝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브런치에 쓰는 글과 책은 어떻고. 인생이란 참말로 "알 수가 없다."
꿈을 꾸고 욕심을 부려서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되는대로 잘 꾸려가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그러면서 발생하는 의외의 상황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게 내 성장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유명한 대사처럼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ing to get.”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항상 느끼는 감정이 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나였는데 다시 한국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진심으로 신기하다.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어딘가 가끔은 나의 인생이 이렇게 다양한 이벤트들로 채워져 간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브런치가 제공해 준 뜻밖의 선물도 반갑다. 썼던 글을 분석해서 이런 통계를 보여주는 것이 재미있고 어쩌면 지난 6년 - 4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 동안 브런치가 삶을 더 풍요롭게, 그리고 예측 불가능했지만 놀라운 행운과 행복을 주었음에 감사하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아들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이 친구가 지금 하는 공부나 성적은 크게 관심이 없다. 엄마가 알면 이런 아빠를 한심하게 보겠지만, 나와 다르게 어떤 삶을 살아갈지가 너무너무 알고 싶다. 과거나 미래로 잠깐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를 위해 쓰기보다는 아들의 미래가 어떨지 알고 싶어서 기회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