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 후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앞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겠구나 였다. 책에는 온갖 이상적인 이야기를 써 놓고 정작 과거를 반면교사 삼지 못한다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여기에 쓰는 글도 그렇다. 리더십이 어떻다, 회사 생활은 이런 것이다, 연구직이라면 뭘 갖춰야 한다.. 말은 그럴 듯하게 싸질러서 세상 사람들 동의를 얻지만 정작 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은 아닐까. 일종의 선험적 효과라는 이유로 자기 검열적 두려움을 모른채 할 수는 없다. 깨닫기만 하고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글의 가치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 마저 들 때가 있다. 별로 필요 없는 생각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아 글을 쓰는 까닭은 작심삼일 하듯 계속 자신을 채찍질 하자는 무의식적 (어쩌면 의식적) 행위라는 변명도 해본다.
상무님이 강조하는 얘기 중에 R&D를 Receive and Delivery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 있다. 말인즉슨 해달라는 요청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다가 처리하고 결과만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다. 처음엔 괜한 말씀 하시네, 우리가 바보도 아닌데.. 생각했는데 현재는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된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자기 일 충실히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감(?) 받아다가 - 고민 없이 -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는 요청이 과학적으로 너무 뜬금 없어서 또는 합리적 사고로는 타당하지 않음에도, ‘하기로 한 일이니까’라는 명분이 있어서 굳이 내 생각을 끼워넣거나 바꿔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는 바꾸려고 해봤지만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학습 효과에 의해 쉽게 포기하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또는 수많은 일 중에 하나라서 생각과 고민 보다는 빨리 처리해 버리고 다음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는 원래 그렇게 일한다고 알고 있어서.. 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생각의 개입 없이 일처리를 하는 까닭이다.
유대인 학살의 핵심 관료였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사례를 읽고 한참을 생각했었다. 전범이라면 악독하고 생각도 삐뚤어진 나쁜 사람을 상상할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취재한 기자는 고민했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나치의 앞잡이가 될 수 있었을까. 결론은 ‘그가 너무 일에 충실해서, 그런데 얕은 사유의 수준을 가졌기에(Sheer thoughtlessness)’라고 말한다. 성실하게 시키는 일을 꼬박꼬박 잘하는 것이 일터에서 중요한 덕목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일을 더 잘하려면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못하면(안하면) 앞에 말한 것처럼 Receive and Delivery를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에 어떤 의뢰를 받은 업무가 있다. 검토를 하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세부 내용을 확인했고 결국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세부 내용이란 것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의뢰하기 전에 궁금증을 갖고 먼저 알아 봤다면 해결 되었을 일이다. 의뢰자가 그냥 ‘받아서’ 들고 온 이유는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 하나로 사유의 부재,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부재를 꼽고 싶다.
사유의 부재는 공감 능력 상실이란 결과와 연결되지 않을까.
갑작스런 후배의 호출에 상담을 해보니 어떤 선배가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월권이라고 생각되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후배의 모습에 너무 미안했다. 앞에서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회사 짬밥만 많이 먹은 나라는 사람의 무기력함까지 오버랩되면서 화가 나고 그랬다. 일을 시킨 선배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 한 사람의 입장만 고려해야 하겠는가. 실무를 해야 할 후배는 어떨지 생각은 했을까? 공감 능력의 부족이 안타까웠다. 주희가 인의예지의 발현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진정한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정약용의 일침이 그저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선배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좋은 논문 쓰니까 많은 생각과 사유를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정작 행동은 그만큼을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생활의 발견>이란 영화에 나오는 이 대사가 대체 무슨 말인지 20대 초반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이란 것을 해보면서 우리 주변에 변형된 형태의 괴물이 상당히 많다는 것에 두려움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순수하고 거짓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 괴물은 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어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잘 다듬어 쓰고 싶은 욕심이 있으나 지금의 감정선을 좋은 말로 바꾸면 안될 것 같아서, 이야기들의 전개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글을 남겨 본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했는데 브런치 독자들께 죄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