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손들

by nay

이를 어째.

한 달 넘게 잎 가장자리가 노랗게 물든 것처럼 변해버린 알로카시아가 이상했다. 이리저리 줄기를 만져보니 말로만 듣던 무름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누르자마자 힘없이 푹 들어가는 물러 터진 모양새가 무름병이란 이름을 단번에 이해시켜주었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병명과 증상을 알았을 때는 이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다. 과습. 아내의 득달같은 요청으로 큰 화분에서 돌을 고르고 흙을 퍼내 잠시 집도의 시간을 갖는다. 꺼내는 순간 무른 부위가 더 꺾이며 힘 없이 잘라질 듯하다. 조심스레 꺼내고 인터넷에서 본 대로 멀쩡한 윗부분을 잘라 아직 살아 있는 곳을 구출해 보려 하였다. 물에 담가 두면 뿌리가 나온다기에 적당한 통을 찾아보는데 마땅한 녀석이 없다. 결국 쓰지 않고 보관하던 오래된 식수통을 꺼내 임시방편으로 꽂아두었다. 수경재배로 유지하면 괜찮은데 왜 과습이면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아내의 말에 수긍한다.


아 어렵고 험난한 식물의 길.

사실 우리 부부는 식물 키우기에 영 소질이 없다. 글쎄 식물을 키우는 것을 소질과 능력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소질이든 취미든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식물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자라게 만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검색해 보면 '그거 엄청 키우기 쉬워요, 저도 잘 키워요' 이런 애들도 우리 집에만 왔다 가면.. 한 번은 풍성하게 자란 해피트리를 받아 온 적이 있는데 아내가 가지치기를 해준다며 손을 댄 이후에 유명을 달리했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이번 알로카시아의 과습은 주기적으로 (AI처럼) 물을 준 내 탓이다. 흙 상태나 온도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초보스런 실수지 뭐.


예전에 이케아에서 몬스테라 모조 식물을 들인 적이 있다. 이 모조 식물은 물을 줄 필요도 없고 분갈이도 필요 없다. 사시사철 아무 곳에나 던져두어도 늘 초록 초록한 자태를 뽐낸다. 가짜라는 것만 인지하지 않으면 제법 그럴 싸 하다. 기술이 좋아서 그런지 멀리서 대충 바라보면 실제 식물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반려 동물의 시대를 지나 반려 식물의 시대라는데 영 식물 가꾸기에 실력이 없는, 저주받은 손을 가진 우리 부부에겐 어쩌면 가짜 식물이 딱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진짜가 아닐지라도 초록빛이 집 안 어디엔가 있으면 기분이 썩 괜찮아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소파 옆에 딱 자리를 잡고 있다.

IMG_0168.JPG 가짜지만 사랑스러워(?)


그러나 이런 태평한 나와 달리 아내는 거실 한 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알로카시아가 병약한 신세가 되어 그 자리가 허전한 것이 영 마뜩지 않았나 보다. 하여 어느 주말 오후, 갑자기 4만 원에 당근으로 고무나무를 구했으니 대충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알겠다, 다녀 오마 하며 혼자 가려고 준비를 하니 무거울 것 같아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하였다. 과연 같이 가길 잘했다. 생각보다 크고 무거운 데다 차에 안전하게 데려오기도 어려워서 그녀가 같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집에 오는 내내 나는 불만으로 입이 이만큼은 나왔을 것이 뻔하였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갑자기 당근으로 분양받은 뱅갈 고무나무가 알로카시아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아, 물론 알로카시아도 언젠가 내릴 뿌리를 기다리며 여전히 물병 안에서 기르고(?) 있다. 소파에 누워 두 식물을 바라보니 갑자기 쟤들도 좋은 주인 만났으면 참 건강한 삶을 누렸을 텐데 미안하단 생각에, 어쩌면 부부가 이렇게 식물을 못 키우는 저주를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남들은 은퇴하면 식물 키우는 소일거리라도 있다는데 우리는 그러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싶어.


IMG_0170.JPG 새로 온 친구야 오래오래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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