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여, 힘을 빼자.

by nay

보통 리더와 미팅이라 함은 반기에 한 번, 그러니까 두어 번 정도 만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특히 팀장님은 만나기 어려운 사람,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위치이다. 그런 경험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새로 부임한 팀장님이 - P&G 다니던 시절에 알게 된 것이라며 - 비정기적인 독대 미팅, 즉 1 on 1 미팅을 하자길래 꽤 신선했었다. 누군가와 단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회사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리더와 미팅을 하면 결국 일은 잘 되고 있는지 취조당하는 느낌을 벗어나기 어렵다. 일상의 근황을 묻다가도 업무 얘기로 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게다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직급이 달라지면 거리감이 생기는 법. 그런 거리감을 유지한 채 1년에 몇 번 얼굴 못 보는 사이가 된다면 하고 싶은 말도 그냥 참기가 일쑤다.


그러니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1 대 1 만남을 꾸준히 한다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그와의 신선했던 경험이 너무 괜찮아서 독자적으로 조직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1 on 1을 나도 써먹어 보기 시작했다. 공감대가 없는 초반의 대화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색함을 극복하면 괜찮아진다. 사람별로 말문을 터 줄 일종의 넛지만 잘 찾으면 된다. 기승전 업무로 빠지지 않기 위해 매번 미팅 아젠다를 고민했고 참여를 유도하려고 했다. 특히 각자의 관심사와 상황을 이해하고 대화의 물꼬를 찾는 것이 1 on 1을 이끌어 가는 기술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여기에 더해 이제야 회사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 나만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자각하였다.


'이제야 깨닫는'에 오늘 글의 방점이 있다. 조직의 규모가 작을 때는 2명, 클 때는 7명 이상의 구성원을 리딩 한 경험이 있다 (과제를 할 때는 열 명이 넘기도 했다). 딱히 냉정한 분석을 한 적도 없으면서 나름대로 꽤 잘해왔다고 자평했었다. 이 정도면 잘했지, 다른 리더들 보다는 성공적으로 운영한 것 맞겠지, 스스로 답을 내곤 했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야'라는 생각을 했다니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리더의 자격으로 자그마치 10년 넘게 역할해 왔는데 말이다. 명색이 연구하는 직장인이라고 했는데 직업이 매니저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직무가 굳어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어리둥절 하다.


예를 들어 초반에 했던 1 on 1은 무작정 따라 하기였다. 그러니까 '나도 이런 것 할 수 있어' 라던가 '다른 사람과 달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기만족적 showing이 아니었나 싶다. 1 on 1을 성실하게 진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로 누굴 위한 시간과 노력이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참여자 서로 부담감을 안고도 1 on 1을 하는 이유는 거리감을 줄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각자의 성장을 돕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 본질이다. 그걸 제대로 고민해 본 것은 부끄럽지만 올해가 처음이다. 과거의 동료들에게 미안해진다.


갑작스런 각성은 또 있다. 얼마 전 상무님으로부터 내년 연구소 주요 과제를 하나 기획해 보라는 명을 받고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과제라면 이골이 나리만치 했다. 돈과 인력, 기대하는 성과의 크기가 각각 다른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운영해 봤고 제법 좋은 성과로 인정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년 과제를 가만히 구상하면서 문득 '아 이제야 뭔가 어떻게 해야겠는지 알겠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에는 과제를 주문받으면 어떻게 화려한 수식어로 잘 꾸밀까를 고민했다. 회사 일에서 그런 것을 놓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진짜는 그것이 아니다. 한 20여년 다녀보니 나를 드러내기 보다는 기여할 수 있는 쪽에 무게를 싣고 싶어진다. Top down 명령을 받아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핵심, 본질, 의미를 나름의 이해로 해석하고 다시 확인하고 구체화 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운동을 배울 때 선생님이 하는 말이 항상 있다.

'힘 빼세요,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요'

어느 운동이든 만고불변의 진리다. 적어도 내가 배웠던 테니스, 수영, 골프는 그렇다. 잘하려고 긴장할 때는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서 정작 필요한 동작이 안되기 마련이다.

회사의 일도 비슷하지 싶다. 힘이 바짝 들어가는 이유는 많다.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내 능력을 과신해서 또는 잘못되거나 부족한 것을 숨기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리더 자신의 힘만 들어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영향은 결국 구성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과한 욕심은 올바른 결과로 연결되기 어렵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길게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긴장한 상태, 힘이 들어간 자세로 운동하다가 부상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다쳐요’

혼자만 다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 가장 크게 깨달은 건, 구성원 없이 내 성과는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오만하게도 '내가 잘해서'였다. 물론 다른 이들의 도움을 인지했지만 결과의 성공 여부는 나의 출중함 때문이라고 여긴 적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오롯이 어느 한 사람의 성과이겠는가. 깨달음의 덕분일까, 어떤 사람의 단점을 찾아 실망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어떤 일을 맡길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만약 바짝 힘이 들어간 상태로 현실을 대하고 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힘을 빼니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불필요한 노력은 줄어든다. 해결해야 할 본질에 집중하게 되고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어야할 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니 쉽지 않겠지만 한 번 쭉~ 힘을 빼보자.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은 그만 두자.


덧.

추가로 하고픈 말도 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항상 옳을 수 없다. 시행착오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나 방향은 없다. 그러나 구성원은 기다리지 않는다. 조급함과는 다른 종류의 기다리지 못함이다. 주변의 동료들을 가만 살펴보면 리더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매니징 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단번에 조직의 방향성을 꿰뚫고 인사이트를 막 던져주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조직이나 과제, 사람에 대한 운영의 경험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나 조차도 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과거의 나를 인정하기 어려워지는데 말이다. 이렇게 뒤늦게 깨닫는 사람도 있으니 그들에게도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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