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이 300개가 되었습니다. 이 글이 301번째가 되겠네요. 사실은 예전에 200개가 가까워 올 때쯤 몇십 개의 글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쓰는 글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던 때였고, 연구직 회사원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 것을 없애기로 한 겁니다. 어디 놀러 갔던 여행기, 전자기기 사용 후기처럼 전반적으로 컨셉에서 벗어난다고 생각되는 글은 지웠습니다. 그 까닭으로 200개를 채우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땐 200개라는 숫자가 대단하게 생각되었기에 꼭 지금처럼 후기를 써야겠다 마음먹었더랬습니다만, 막상 200번째 글은 무덤덤하게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 때의 허탈함 같은 것이랄까요. 작가라는 타이틀이 지금보다 더 쑥스럽던 시절이었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부지불식간에 100개의 글을 더 썼습니다. 언제 이렇게 금방 채웠나 싶습니다. 300번째 글을 쓰기 전, 299라는 숫자를 보고 ‘아, 한 개 남았네'란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아무 느낌 없이 300번을 채우고 맙니다. 그리고 문득, 오늘은 그 소회를 써봐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가급적 일기 성격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언젠가 제 동료가 저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글쓰기에 대해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요지는 자기도 글을 써볼까 시작했는데 자꾸 일기 같은 글이 써진다라는 것이었죠.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여전히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특히 직업적 고민이 담긴 글은 또 성격이 다르기도 하고요. 혹시라도 제가 쓴 글을 보면서 속으로라도 ‘일기는 일기장에 씁시다'란 생각을 하신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긴 어렵더라도 다수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300개의 글을 쓰는 과정 속에 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수련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다행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울림을 주는 글을 썼다면 그것으로도 보람되고 가치가 있는 행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300개의 글을 쓰면서 성장했을까요? 아니, 우리는 꼭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겠지요. 200번째 글을 쓸 때 느낀 ‘작가'의 부담과 쑥스러움이 300번째 글에서는 조금 희석되긴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부지런한 글쓰기가 앞으로 저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줄지를 크게 기대하지는 않으렵니다. 기대 대신 즐거운 상상과 함께 작가라는 부캐 타이틀을 부여해 준 기회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 것이 큰 수확입니다. 최근 들어 겪고 있는 40대 후반의 지독한 사십춘기를 현명하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 내 이야기를 적어 두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으니까요.
출간 소식에 응원해 주신 댓글, 어떤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위로와 힘이 되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저의 이야기와 생각에 공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이런 오글거리는 글은 지양하겠습니다. 하지만 브런치가 베타 딱지를 달고 있을 때부터 쉬지 않고 이곳을 들락거린 정성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한 번 정도는 꾸준했던 브런치 생활을 자축할 정도의 자격은 있다고 봅니다. 좋은 글로 끊임없이 저를 자극시켜주시는 다른 작가님들께도 인사드리며, 301번째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