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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삶에 대한 소고

by nay

예전에 M본부의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꽤 좋아했었다. 결혼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지만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삶을 몰래 구경하는 것의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이 프로그램은 사실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를 들면 옥탑방에서 살던 가수 육중완이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배우 김광규나, 어떤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가수 김반장, 그리고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웹툰 작가 기안 84의 것을 볼 때만 그러했다. 지금의 나혼산을 별로 즐기지 않게 된 것은, 멋진 한강 뷰를 자랑하는 아파트에서 여유롭게 일어나는 셀럽의 삶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없게 된 이후이다.


잘 가꿔진 누군가의 삶을 몰래 쳐다보는 것에 느끼는 불편감은 단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한 그들에게 보내는 부러움이나 동경의 시선 때문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좁은 집이나 숙소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날이 있을 것이다. 연예인치고 소위 금수저로 성공한 케이스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남들이 모르는 어려웠던 과거가 있다.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호화롭고 여유로운 삶에 느끼는 반감의 이유는 무엇일까. 육중완이나 김광규 시절의 소박한 이야기가 맘에 들어서였다. 누구나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듯이 시청자인 나는 멋진 아이돌의 싱글 라이프엔 무덤덤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과거의 <유퀴즈>가 코로나 이전에 거리에서 급히 섭외한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대본에도 없는 바로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과도 비슷하다.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할머니의 이야기, 은퇴한 아저씨의 이야기, 그리고 놀이터에 뛰노는 아이들 이야기가 좋았다. 요즘의 유퀴즈는 사전 섭외된 인물과 작가들의 각본이 충분히 반영된 뻔한 토크쇼가 되어 버렸다. 가끔 일반인이 출연하기도 하고 명사나 유명인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지만 내가 즐겨보던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서 예전만큼 챙겨볼 엄두는 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결의 이야기지만 최근 종영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는 꼬박 챙겨보게 되었다. 제주도라는 한정된 지역의, 한 두 다리만 건너면 그 집에 수저가 몇 개인지도 다 알고 지내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 어째서 공감하였던가. 호화로운 배우들의 캐스팅은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덤이었을 뿐이다. 작가가 써내려 간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인공의 삶에 아파하고 공감하면서, 어떤 때는 관조하듯이 그리고 내 삶을 잠시라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


하긴 모든 것이 자극적인 시대이다. 언젠가부터 누구나 쉽게 말하는 ‘혐오’라는 말이 정말이지 싫다. 싫다는 말이 언젠가부터 극혐, 혐오가 된 이 시대가 안쓰럽고 답답하다. 그냥 싫다고 해도 될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리는' 것으로 더 강하게 말하는 사회가 어째 위험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언어 습관이 사고를 지배한다고 믿는다. 사람이 아닌 물건을 극존칭 하는 언어생활은 당황스럽다. 남과 단지 다른 면을 ‘틀린’ 것이라고 잘못 쓰는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틀린 것이 된다. 생각의 다름을 틀림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타협과 협의의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편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만드는 이런 분위기를 걱정한다.


얼마 전 평양냉면을 먹었다. 슴슴하니 별 맛없는 것이 제 맛이었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으면서도 며칠 지나면 생각나는 그런 슴슴함, 덜 자극적인 하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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