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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으로 힐링하는 남자

by nay

아침 9시. 손목 위에서 애플 워치가 마음을 챙기라고 알람을 주었다. 매번 조금씩 주제가 바뀌는데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서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소파에 멀뚱히 앉아 생각을 해보는데 적당히 떠오르는 무엇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뭘 할 때 기분이 좋더라 하는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지 못하고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가 문득, 잘 정리된 거실의 아침 풍경이 들어왔다. 어지럽혀 있지 않은 거실 바닥 위에 열어 둔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다.


정돈된 것들을 좋아한다. 집 안, 방 안 또는 침대나 책상 위에 물건이나 옷 가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기보다는 정해진 자리에 제대로 들어가 위치한 것이 좋다. 언젠가 빨래를 개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꼈던 작은 쾌감의 연장선이자 어쩌면 더 근본적인 정리정돈의 즐거움이다. 가끔 인테리어를 다룬 잡지를 보면 자연스러운 어지럽힘을 볼 때가 있는데 절대 그런 건 따라 하지 못하겠다.


정리된 것은 단지 제 자리에 있음으로만 만족되지 않는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를 마쳤을 때 전체적인 시공의 내용은 좋았으나 디테일의 마감에 대한 아쉬움이 컸었다. 아쉬운 디테일이란 새로 짜 맞춘 서랍장의 손잡이가 수평으로 나란히 있지 않고 1-2도라도 조금씩 틀어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둔 채 다 되었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서랍이 닫혀있을 때 각각의 서랍 크기가 조금씩 다르게 재단되어 생긴 단차로 인해 전체적인 면이 매끄럽지 못한 것, 장식장의 선반 크기가 달라서 어떤 것은 2-3mm 더 튀어나온 것 같은 것을 잘했다고 칭찬하기는 어렵다. 언젠가 지금 일하는 연구소 리모델링 후에 회장님 방문이 있었을 때, 그가 지나가다가 ‘저기 냉장고 한 대가 살짝 틀어져 있네요'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높으신 양반이 별 걸 다 신경 쓰시네 했었다. 이젠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잘 정돈된 전체 중에 하나가 튀는 것은 눈에 확 들어오기 마련이다.


며칠 째 벽걸이 TV 뒤에 숨겨둔 선이 중력에 의해 조금 내려와 앞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살짝 보이는 회색 선이 눈에 거슬린다. 그런 걸 그냥 두고 넘어가지 않고 몸을 움직여 절대 보이지 않게 해결하는 행위. 아들 책상 아래쪽에 보이지 않게 달아 둔 멀티탭의 양면테이프가 약해져 떨어졌으니 그걸 다시 깔끔하게 정리해 두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소소한 - 그러나 남들이 보기엔 편집증적일 수도 있는 - 정리의 기쁨이다. 정리와 각잡힘을 통해 내 마음은 평화를 찾고 뿌듯함을 느낀다. 건조대 위에 널려있던 빨래들이 아빠 옷, 엄마 옷, 아들 옷 각각의 서랍과 옷장에 착착, 그것도 원하는 방식으로 접어서 넣어둘 때가 좋다. 남들은 좋은 풍경이나 맛있는 것을 먹고 힐링을 한다던데 나는 돈도 들지 않고 그저 몸만 쓰면 되니 참 경제적이기도 하다. 단, 이런 일을 할 때 집에 가족이 있으면 안 된다. 나 혼자 가만히, 조용히 그러면서도 부산스레 움직여야 한다. 누가 있으면 괜히 신경 쓰여서 싫다.


그래서 주말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지 않고 밖으로 나와있는 물건들을 어디 치워둘 곳은 없나,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애들은 없나 찾아보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못하고 주중에 바삐 회사 다니고 주말에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이번 주말은 유달리 매주 일이 있었던 5월 주말 치고는 한가하다. 드디어 나의 힐링 타임이 시작될 수 있기에 아침부터 괜히 느긋하고 여유롭다. 정리가 필요한 일을 해결함으로써 삶을 더 간결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 이게 나의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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