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두 번째 묵는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낮에 잘 놀고 저녁이 되어 들어왔다. 7월 말의 제주는 무척 더웠다. 샤워를 했지만 강한 햇빛 아래에서 놀면서 달궈진 몸은 쉽게 식을 줄 몰랐다. 벽에 붙은 온도 조절기를 찾아 에어컨 온도를 마구 내렸다. 그런데 영 시간이 지나도 시원해지지 않기에 다시 보니 설정해 둔 온도가 20도 근처다. 그런데도 이리 덥다니, 영 이해가 되지 않아 어지간해서는 잘 맞추지 않는 18도까지 온도를 내려 보았다. 그럼에도 현재 방의 온도는 23도를 가리켰다. 애초에 이 온도라면 무척 추워야 하는데 온도계에 표시되는 온도와 체감 온도가 너무 달랐다.
0번을 누르고 전화를 했다.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조절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하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중앙 냉방입니다. 다른 방으로 가셔도 마찬가지입니다”
5성급 호텔에 각 방마다 온도 조절기가 달려 있는데 중앙 냉방이라니 믿기지 않아 다시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많은 호텔을 묵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어이가 없고 살짝 화가 나서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중앙 냉방을 하느냐, 그럼 온도 조절기는 왜 달았냐, 이 정도 시설의 호텔이 그게 할 말이냐.
명백하게 시설과 운영에 대한 비난의 말을 던지는 것이었지만 대표나 전체 관리자가 아닌 일개 직원에게 내가 할 소리인가, 제대로 된 클레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마음속으로 계속 질문이 던져졌다. 수화기 너머 죄송하다며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그 직원이 나의 비난을 달게 받아들일수록 큰 소리를 치기 무안했다. 어째서 나는 그에게 화를 내고 있는가. 교양 있는 문화 시민이 되고 싶은 자기 이미지를, 고작 에어컨 하나로 망치는 것 같은 자기 검열식 상황이 더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괜히 질 나쁜 고객의 진상짓을 통해 룸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려는 수작을 부리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싫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낸 투숙비와 호텔 등급에 따른 룸 컨디션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 손님으로써 찾아야 할 권리조차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블랙 컨수머가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내내 더운 상태로 화난 마음을 가진 채 착한 손님인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가치의 충돌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응대했던 직원은 선풍기를 하나 올려 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래요, 그렇게 해주시죠. 방이 아주 더워서 선풍기로도 해결 안 될 상황은 아니니까. 그리고 기대대로 선풍기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방은 금세 시원해졌고 마음은 누그러졌으며 갈등 또한 종료되었다. 직원의 응대는 훌륭했다. 매뉴얼대로 한 것인지 기지를 발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그 호텔을 찾을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