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빠져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품목이 있다고 하였다. 자동차, 음향기기, 시계 등등. 돈 들고 시간 들고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마음이 동해서 바꾸기 일쑤인 것들. 거기에 하나 더 하면 카메라(사진)가 있을 것이다. 2000년~2010년 사이에 디지털카메라는 굉장히 핫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캐논 브랜드로 시작해서 필름 카메라를 거쳐 소니까지, 남들처럼 마구잡이로 기계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새로 나온 제품에 대한 관심이 결코 적지 않았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먹어 버려서 카메라 리뷰로 널리 알려졌던 유명 사이트 마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격세지감이란 표현이 딱 맞지 싶다.
그중 라이카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디지털카메라까지 이것저것 써 봤지만 라이카는 가질 수 없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비. 싸. 서.
직장인이 된 후 사진에서 예전만큼 열정을 찾지도 못했고, 나이가 들면서 마찬가지로 바꿈질 또한 줄어들었다. 언젠가부터는 조금 무리하면 라이카라는 브랜드 제품을 살 수 있었다. 다만 그것마저 가지면 더 이상 목적지를 잃은 사람처럼 되지는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한 적 있다. 끝판왕은 어딘가 남겨 두어야 식어버린 열정이라도 불씨가 죽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열렬히 가지고 싶다면 언젠가는 손에 쥐게 되는 법. 충동적인 마음이 화르르 타오르면 집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집착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그 물건이 사라지거나 아예 관심이 다른 제품으로 넘어가거나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몇 년 전 라이카 Q는 나에게 왔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하드웨어인 카메라를 제외하고 항상 나를 따라다닌 고민은 바로 ‘전시’였다. 온라인 사이트에 맘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골라 주문하고 배송받아 액자에 넣고 벽에 거는 행위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아날로그적 감성, 사진 한 장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는 맛이 있지만 디지털화되어버린 수많은 사진을 모두 현물화 하는 것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액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손재주가 좋은 분들은 중고 모니터와 라즈베리 파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만드는 걸 보고 따라 해 볼까도 싶었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난 그냥 기성품이면 된다, 때깔 잘 빠진 완성도 높은 걸 가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그러던 중 갖고 싶은 제품이 생겼다! 무려 일 년 여의 고민과 숙성 끝에 비로소 당근에서 괜찮은 물건을 구매했다. 종종 기회가 있었지만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체 간 뒤라 ‘판매 완료’라는 메시지만이 쓸쓸히 남아있었다. 그럼 또 한참을 잊고 지냈다. 생각나면 다시 검색어를 넣고 알림을 받아 보다가 또 괜한 미련이다 싶어서 지우기를 반복했었다. 무슨 이유인지 이번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중고나라와 당근, 번개장터를 누비고 다녔다. 이번 판매자는 사용하지도 않고 열어만 봤다고 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비닐에 고이 쌓여 있던 녀석은 먼지가 소복이 쌓이다 못해 표면에 접착된 느낌마저 주었다. 사기 전부터 봐 왔던 다양한 리뷰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세팅을 마치고 집 안 한 곳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이제 나의 여행의 추억들이, 일상의 기억들이 21인치 화면에 고스란히 전시되기 시작한다. 설치하고 보니 뿌듯하다. 다만 나만 뿌듯한 것 같아 좀 서운한 면도 있다. 가족들은 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가젯(디지털 기기)을 구하게 되어도 큰 감흥이 없어졌다. 새 제품이 나와도 그저 그런 마음이 든다. 꼭 사야지, 갖고 싶다고 욕심이 생기던 물건들의 위시 리스트가 희미해져 버렸다. 글쎄 이게 나이가 드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하도 사고팔다 해보니 정작 별 것 없더라는 허무에서 오는 깨달음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특히 애플 제품의 경우 사람을 현혹시키는 재주가 있었던 - 현실 왜곡의 장이라고도 불렸다 - 스티브 잡스가 더 이상 신제품 키노트를 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하나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외에 다른 회사의 물건에도 비슷한 생각이 드니 결국 내 마음이 달라져서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류 봉투에서 근사하게 미끄러져 나오던 맥북에어 1세대 제품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정말 열렬히 갖고 싶다는 마음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 준 사건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어린아이 같아서 귀여워 보였던 건지, 아내는 고맙게도 당시 3백만 원이나 주고 그걸 사도록 허락했다(지금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으니 아내도 어렸던 모양이다). 여하튼 내게도 이런 욕심과 집착, 열정이 생길 수 있구나 했던, 그러고 보면 나도 무엇에는 뜨거웠던 사람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이번에 디지털 액자를 하나 들여놓고 소파에 앉아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라는 사진 감상은 뒷전이고 나란 사람에 대한 회고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