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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pr 04. 2024

팔로우를 끊고 돌아본 나

1.

링크드인에서는 누군가를 팔로우를 하면 그가 작성한 포스팅뿐 아니라 추천을 한 다른 사람의 글이 내게도 고스란히 노출된다.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게 커피챗을 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커피챗이란, 간단히 요약하자면 타인과 커피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눴다는 것인데, 인연을 만들기 위해 능동적인 네트워킹을 했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처음엔 잘 모르는 사람에게 용기 내어 ‘한 번 우리 얘기 좀 하죠’라며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다른 세계의 일 같았달까. 그런데 비슷한 내용의 글이 매일 올라오고 그에 달린 칭찬 일색의 댓글, 이에 질세라 그와 1촌 관계인 사람이 ‘저도 했어요, 잘했죠?’와 같은 반복이 쌓이면서 읽는 것 자체에 피로감이 들었다. 경쟁적으로 커피챗을 자랑하는 모습이 (미안한 말이지만) 어쩐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친목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를 홍보하고 브랜딩 하고 싶은 열망은 이해가 되지만, 굳이 내가 피곤해하면서 남들의 자랑을 읽고 있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마침 브라이언 코치의 글이 이런 내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가져와 보았다.


코치 브라이언 님 글 https://blog.naver.com/yoojun0/223400444782



브라이언 님의 글은 1) 자기 자랑식 글이 가진 최초의 의도가 흐려질 수 있음을, 그리고 2) 링크드인 같은 곳에서는 누구도 나의 행위에 대해 교정이나 조언을 해주기 어려워 자기 통제가 쉽지 않다는 인사이트가 인상적이었다.


2.

아래의 글 역시 내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크기는 고정되어 있다. 쓰면 고갈되는 것이 에너지. 중요하지 않은 일엔 힘을 빼고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은 그만큼 감정/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내가 집중할 것 이외에 나머지는 둔감하게 지내는 것이 에너지와 여유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 여유를 유지하고 번아웃을 관리하는 방법 by 신수정 <커넥팅>


이에 대한 구글 UX 디자이너 김은주 님의 생각이 타인의 자랑 글에서 피로를 느낀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https://blog.naver.com/junedec369/223397063139


이런 의견에 백번 동감한다. ‘내게 주어진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오고 있었는데 그걸 딱 정리해 준 내용이라 진짜 반가웠다. 내가 생각하는 에너지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사실은 그 두 가지가 복합된 총체이다. 당연히 한정된 자원이다. 특히 난 내향형이어서 그런지 잘 쉬면서 충전해 줘야 한다. 불필요한 곳에 신경 쓰는 일을 줄이고, 챙길 것만 잘 챙겨 보는 것에도 이미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어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쓰지 않으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웃긴 얘기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의 에너지를 더 잘 다루게 되었다. 그 이유는 1차적으로 체력이 달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신경 쓰고 챙겨야 할 범위와 깊이는 오히려 확장되었다. 따라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확연히 줄어든 만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자연스레 늘었달까. 예전에는 다른 팀의 누가 무슨 일을 벌였다더라, 이런 가십 하나하나에도 귀를 쫑긋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가급적 발끈하고 받아치기보다는, 인정하고 빠르게 교정하는 과정이 덜 수고롭다. 그렇게 적립한 에너지를 이용해 책을 한 자 더 보고, 글을 한 자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3.

고백하자면 지난달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링크드인의 팔로우를 정리했다. 굳이 불편함을 느끼며 남의 글을 보고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던 까닭이다. 실은 전부 다 끊었다가 혹시 알고 있으면 좋은 정보도 못 볼까 싶어 걱정이 살짝 있었다. 그래서 한두 명 남겨 놓았더니 그 사람을 통해 또 예전 사람이 연결되어 글이 올라오곤 해서 -1촌의 세계가 좁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 끊어 버렸다.


조금은 다른 이유에서지만 브런치의 작가 구독 역시 정리했다. 구독에 올라오는 글을 숙제하듯 읽을 이유가 없는데, 언젠가부터 조바심을 느끼며 하루를 넘기기 전에 급히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심지어 좋아하던 작가의 글마저도 대충 스크롤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나의 글에 거의 항상 좋아요를 눌러주는 작가님들에게 답례를 하듯, 일부러 찾아 읽었다는 티를 내는 행동을 이젠 그만 멈춰야 할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적절한 선긋기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4.

유달리 브런치에서 그 행동은 마치 단톡방에서 몰래 나가기를 누르는 것 같았다. 잘 연락하지 않지만 서로 가지고 있던 상대의 연락처를 남몰래 고민하다 지우는 것 같았다. 괜히 혼자만 좋아하다가 스스로 지쳐서 좋아하기를 그만두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상대방에게 뭔가 배신의 행위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자발적인 정리를 하고 한 달 이상을 지내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쾌적해진 기분이다. 어떤 면에선 한시름 놓기도 했다. 관심을 두고 매일 들여다보던 상대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다는 불안감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자원을 세이브한 만큼 더 집중할 수 있는 작업에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작가들의 글을 예전보다 집중해서 읽고, 링크드인 타임라인의 리프레시율은 적지만 마음의 불편함이 없어 좋다.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다.


5.

나의 타임라인에서, 구독에서 사라진 그들의 활동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자연스레 돌아보게 되었다. 한 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필요한 만큼 영향을 받았고, 그들을 통해 나의 행동이나 생각, 글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감사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내게 긍정적인 유효성 또한 없음을 깨달았다.


한 편으로 나의 글이나 활동이 남들에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사라져도 아쉽지 않고 누군가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자기 자랑식 글의 반복으로 독자들의 피로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이렇게 팔로우를 정리해 보니 브라이언 코치의 말마따나, ‘지속적인 자기 객관화’의 한 방법으로 나를 마음의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린 물건들을 제 자리에 착착 두는 물리적 정리의 습관을 주기적으로 행하듯,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불편하게 하는 요인들을 돌아보는 정신적 정리의 시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들여야 할 습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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