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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27. 2023

잘못된 자세로 백날 연습해 봤자.

골프 스윙에서 찾은 일터의 인사이트

골프를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되었다. 올 중순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공이 잘 안 맞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비거리(공이 날아가는 거리)도 줄고, 공의 방향도 엉망이라 연습장이나 골프장을 갈 때 자신감 마저 없어졌다.

멘털이 중요한 운동이므로 자신감이 없으면 될 것도 잘 안 되는 법. 지난번에는 최악의 경기를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일단 내 맘대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자세라도 다시 하나 둘 잡아보자 싶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의욕이 좀 생겼다. 그러다가 어떤 골프 유튜브 채널에서 그동안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내용을 발견했다. 그동안 스윙 방법에 대한 이해에 오류가 있었고, 그런 오류를 그대로 반영한 채 스윙을 하고 공을 때리려니 당연히 결과는 엉망이었던 것이다. 교정된 자세로 연습을 해본다. 과연 맞는 것이 다르다. 도망갔던 자신감이 슬슬 돌아오고 갑자기 라운딩을 나가고 싶은 욕심마저 들었다.


잘못된 자세로 백날 연습해 본 들 실력은 늘지 않는다. 1만 시간이든 그 이상이든 제대로 연습을 할 때 넥스트 레벨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내 자세에 대해 뭐라고 할 때 고깝게 듣지 말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겸손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만약 남의 말을 듣기 싫다면 자기 객관화를 철저히 해야 한다. 발전 가능성은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생각해 보면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전략을 잡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린 뒤에 열 번 스무 번 도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초반 의사 결정 자체에서 이미 그 결말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갑자기 스윙 자세를 교정하려다 보면 그나마 되던 것도 잘 안되고 아예 엉망이 된 경험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건드렸다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고쳐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잘못된 자세(일의 태도나 의사 결정의 방법 또는 방향, 조직 문화)를 익숙하다고 고집하거나, 완전히 망가질 것 같다고 겁내지 말아야 한다. 조준을 잘못한 화살이 과녁을 맞히기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또 하나 의아했던 점이 생겼다. 가끔 프로에게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는데 그는 단 한 번도 지금 문제가 되었던 내 스윙 자세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부분을 잡아준 것은 있다. 도움이 된 것도 맞다. 하지만 이번에 스스로 교정한 자세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진짜 기본 중에 기본인 자세와 방법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많은 운동에서 과거 실력이 출중했던 사람은 정작 좋은 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그게 왜 안돼?’라는 생각, 자신에겐 너무 당연한 자세나 동작이기 때문에 초보의 입장에서 고쳐야 할 부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보 마음은 초보가 제일 잘 안다고, 아내의 스윙을 보면서 어렵고 잘 안되던 부분에 가장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책과 글로 만나는 수많은 좋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골프 스윙을 이해했다고 해도 따라 하기 힘든 것은 내 몸이 프로와는 다르기 때문이고, 스윙을 하는데 필요한 근육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아서이다. 프로에게는 지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기초적인 것을 정작 배우는 입장에선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어려운 자세지만 ‘잘 때리면’ 공이 잘 날아가리라는 결론은 너무 뻔하다. 물론 체계적인 지식과 이론을 익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근육을 쓰는 데 있어 이미지 트레이닝은 상당히 중요하다.

리더십도 그렇다. 이론과 실제는 타산지석으로 삼는 자세로 책 등을 통해 남들의 좋은 얘기를 익히고 참고하되 내게 부족한 면을 콕 집어 주거나 옆에서 관찰해 줄 수 있는, 그런 동료나 선후배를 만드는 것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아 줄, 그래서 이상하게 공을 치고 있지 않도록 조언해 줄 멘토-선배, 동료, 후배든 누구나-가 필요하다.


혹시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몇 달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나아진 점은 전혀 없을까? 글쎄, 공을 칠 때마다 화가 났고 좌절했으며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스윙 영상을 녹화하고 프로의 그것과 비교해가면서 잘못을 찾아낸 순간의 희열 정도는 있겠지만 돌아온 여정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고칠 점이 있다면 빠르게 의사결정할 것, 적절한 조력자를 찾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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