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가족과의 여행은 번거롭다고 느껴왔다. 번거로움의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선 여행의 의지가 없는데도, 이미 자기 맘대로 결정해 버린 아내의 말을 따라야 한다거나, 여행지에서 (내 생각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액티비티를 위해 잡다한 것(스노클링 장비, 아쿠아 슈즈 등)들을 챙겨 간다거나, 중학생이 된 아이의 짐 마저도 하나하나 부모라는 이유로 챙겨 넣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원하지 않는 것, 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야말로 자유여행. 10년을 기다려 온 이 기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의 짐을 싸는 것은 편했지만 별로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번에 특히 챙긴 것은 햇반과 컵밥, 컵라면, 즉석 카레와 같은 음식꾸러미였다. 평소 어디로 떠날 때면 뭘 그런 걸 다 싸가냐고, 가서 사 먹으면 된다고 타박했었다. 되려 바리바리 챙기는 내가 웃겼다. 살벌한 물가를 걱정하며 아침저녁은 숙소에서 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대신 혼자 밥 먹을 상상을 하면 영 재미없는 여행의 일정이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 케플라비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적어도 내가 보기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없는 것을 보니 어쩐지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외로움에 진하게 젖어들었다.
깨닫기 위해 꼭 혼자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은 일터에서, 스치는 인연에서, 매일 반복되는 가정에서 늘 기회를 엿보다가 나타난다. 잘 들여다보면 발견하는 일상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의 굴레 안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 맨날 먹는 음식들, 내일이 되기 전에 (꼭 그래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해결해야 하는 나의 일거리들은 보통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몸과 마음 둘 다 또는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피로하면 뇌는 잠시 쉬어가도록 만든다. 그러다 보면 소파에 누워 슬슬 졸기만 할 뿐이다. 아니면 침대에 나가떨어져 비루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 주인공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적당한 자극을 받기에 불친절한 상황이다.
평범한 날은 좀 더 형이상학적인 질문 - 예를 들어 나의 존재 가치라던가, 스스로 존중해야 할 이유라던가, 살아가는 목적에 대한 질문처럼, 있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꽤 의미 있는 삶의 질문에 대해, 애써 답을 찾게 만드는 필요와 기회를 제공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지구의 축소판 또는 아예 다른 외계 행성 같다는 머나먼 유럽 섬나라에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회사 동료는 물론이요, 가족도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내 맘대로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며 다니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 한편에서 대단한 깨달음을 팍 얻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걸 글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풀 한 포기에도 감정을 이입하고 늘 뜨고 지는 해와 달에도 의미를 그럴듯하게 부여할 수 있지 않겠나.
허나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도 전에 이미 알아 버렸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는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원래 그랬던 것을 다시 알아차린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귀찮았던 여행의 동반자가 함께 하지 않는 게 무척이나 낯선 풍경으로 느껴졌다. 홀로 떠나는 먼 여정의 막연한 흥분과 설렘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어쩌지? 이런 걱정이 앞서는 점도 그렇다.
애초에 되게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때로는 아내에게 책망을 들을 정도로 그렇다. 가족이나 동료에 대한 책임감의 부재라기 보단 사고 자체가 나 중심인 사람이다. 남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뜰히 챙기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혼자 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지만 함께 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끼지도 않았다. 누가 싫어서가 아니라 성격이 좀 지랄 맞은 탓이다.
그러나 확실히 누군가 옆자리에 있다는 상황만으로 꽤 큰 지지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혹여 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들고, 핸드폰도 흘리듯 놓고 다니는 아내가 곁에 없다. 당연히 편해야 하지 않은가? 그녀의 짐 대신 되려 내 핸드폰과 여권을 챙기는 게 어색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의 부담'을 함께 짊어져 주는 사람의 부재 그 자체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혼자가 되어 보니 가족의 존재감이 부각된다. 아니 나 홀로 온전히 즐기는 여행을 기대하며 이 기회를 마련한 것인데, 어쩌면 이 여행의 끝에는 그저 ‘있어 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 사람들을 생각하는 내가 되어 있을까 봐 기분이 묘하다. 그건 집이든 회사든 마찬가지다. 내가 잘나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 투성이다.
계획한 대로 기대한 만큼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의 이유라면 이 작은 깨달음도 그 축에 끼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