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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Nov 08. 2024

자랑 없는 인생

알고 지낸 지 20여 년 정도 된 사람이 있다. 지금이라면 서로 안다고 해도 쉬이 페이스북 친구를 맺거나, 인스타그램 맞팔을 냉큼 하지는 않을 것이다만, 과거에 맺은 관계의 연 덕분에 그와 소셜네트워크까지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서 맺은 인연이 가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때가 되면 보고 싶다거나, 한 번은 만나야지 하는 관계까지는 아니다. 그리하여 가상 공간의 친분 유지는 끊자니 이상하고 계속하자니 어색한 정도겠다. 달리 말하면 사석에서 만날 일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공석에서 보면 잘 지내냐, 별일 없냐는 형식적 인사가 전부일뿐인 사이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혹시 살면서 언젠가 서로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하여 유지되는 관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곁엔 나 같은 공적, 사회적 친분을 가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흉금을 털어놓고 언제든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취기 어린 붉어진 얼굴로 환하게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대학 동기들이 있다. 나이와 경력이 있는 만큼 다들 이제는 사회의 한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는 그런 친구들의 위상 덕에 유명인을 만나 사인을 받기도 했다. 내가 일면식 없는 그의 친구들 속사정까지 훤히 알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과 사진 덕분이다.


이렇게 말하면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그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다. 그에게만 야박한 건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궁금하고 또는 함께 하고 싶은 타인의 인생은 거의 없다. 내 것 살기도 바쁜 마당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오지랖 넓게 관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되려 가끔 올라오는 타임라인의 업데이트 덕분에 피동적으로 그 사람의 근황을 보고 받는 격이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보기 싫으면 친구는 유지하되 팔로우를 끊어버리면 됨에도 그리 하지 않는 것은, 몰래라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관음적 성향 때문일 게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딱히 궁금할 것도 없지만 남들은 뭐 하고 사는지 알려주는 걸 애써 마다하지 않는다. 내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더더욱.


그의 삶은 매우 바쁘다. 최근엔 해외에서 열린 학회를 다녀왔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오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나자마자 한국에 와서 중요한 임무가 있는 모임에 다녀왔고, 이어진 다른 학회에서 새로운 지식을 쌓았다. 그의 글에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얼마나 바빴는지, 누구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빼곡하게 적힌다. 은근하기 보다는 직설적이기만한 그의 바쁜 인생과 기록으로 남긴 순간들이 내겐 피로하면서도 꽤나 흥미롭다. 바쁘게 사는구나, 하지만 나라면 저렇게 안 썼을 텐데 하면서도 가감 없이 늘어놓는 그의 말들이 크게 밉지 않다. 체험을 통해 얻게 된 감상이나 인사이트보다는 팩트 위주의 묘사라 그런 것일까, 그저 ‘아 이 냥반 또 시작이군‘하는 생각으로 그친다. 그래서 페북 친구 사이를 크게 애쓰지 않으며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별로 미워할 것 없는 무해한 사람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 나와 달라서일지 모른다. 대신 내 삶에 크든 작든 자신의 존재감을 부러 드러내며 영향을 미치려 했던 사람들과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언젠가부터 절연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관계는 동료 의식을 기반에 둔 것인데, 이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설명 된다. 다분히 개인적 주관에 의존한 기준일 수 밖엔 없지만, 여하튼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단숨에 또는 서서히 멀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물론 역으로 상대가 나를 끊어낸 경우도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서운하지는 않으나 미안한 마음은 남아 있다.


요즘은 페이스북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정말 개인적 기록으로 남기거나 몇 년 뒤 찾아볼 요량으로 하려는데, 그것조차도 무해하기를 바라다보니 도통 쓸 말이 없다. 왜냐하면 가끔 올라오는 과거의 글을 볼 때면 어쩐지 부끄럽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과거의 오늘’에 10년 전 아내 생일을 어떻게 잘 보냈는지 자랑한 게 떴다. 다시 보니 우습다. 내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 남들에게 떠벌리는게 소셜 네트워크의 주된 기능 중 하나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살아가며 생기는 즐거움이 이젠 내 안으로 향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참지 못하고 올린 포스팅에 대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일촌들이 거부감 없이 봐주기를 바란다. 나이를 먹을수록 떠벌리기보단 겸손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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