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창을 다녀왔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에서 진행하는 승급예비자 대상 교육에서 강연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처음 의뢰 메일을 받았을 땐 정부 출연 연구소의 일반 연구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회성(이벤트 같은)으로 알았다. 막상 최종 프로그램을 받고 보니, 총 2박 3일의 연수 과정 중 오전의 한 세션을 통으로 맡은 것이어서 놀랍기도 했고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주어진 주제(기획과 발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충분히 있었다. 하고 있는 일일뿐더러 평소 생각해 왔던 내용이 있었다. 다만 그걸 티타임에서 한두 명과 얘기하는 것과, 다수의 앞에 서서 공식적인 강연을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듣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보는 공부하고 정리해서 만들면 되는데, 청중들에게 나중에 ‘그 강연 괜찮았다’라는 피드백을 받으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요소들이 있다. 강연의 스킬과 알찬 구성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정말 중요한 건 ‘공감대’라고 생각한다. 울림이 있는 강연을 들었던 것을 기억해 보면 화자의 화려한 언변과 유머보다, 내가 듣고 싶었던 얘기를 상대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였다.
그러한 공감대 형성에 있어 장애물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은 서로가 처한 상황의 다름이었다. 나는 박사 졸업을 마치고 바로 사기업에 취업해서 20년을 넘게 근무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현재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강의 주제인 기획과 발표의 본질적인 내용이야 사기업이든 정부 출연연이든 다를 바 없다. 이론적인 것은 굳이 내 강의가 아니더라도 여느 수많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듣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이상적인 그림과 타협 가능한 지점을 제시하는, 그래서 정말 간지러운 부분을 세밀하게 터치하기엔, 오랜 기간 전혀 다른 환경에서 경험을 축적하고 살아온 내 강의 내용은 닿을 수 없는 한계가 분명했다. 강연 후 받은 질문 중에도 은연중 기업 연구소와 출연 연구소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어려움이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떠나기 전, 초청 연사로 불러준 담당 연구위원님과 얘기를 나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오는 미묘한 간극 때문에, 나의 강연이 청중들에게 얼마나 의미를 줄 수 있었을지에 대한 작은 걱정을 주제로 말이다. 연구위원님은 들으시는 분들이 자신의 처지에 맞게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강연자인 나를 배려하며 말씀해 주셨다. 며칠 지나 회고를 해보니 나야말로 강연자 입장에서 정부 출연 연구소의 상황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의 주제인 기획과 발표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핵심이 바로 나 중심이 아닌 상대 중심으로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었다. 정작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던 것이 아닌가 이제와 후회가 된다. 해당 주제를 '강연'으로 하는 건 처음이라 자료 준비에 애를 많이 썼다. 자료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더불어 청중들이 가질 수 있는 현실적 질문들을 더 공부했어야 하지 않는가 싶다.
강의 내용 중, ‘사람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논리야 말로 연구원들이 가져야 할 (아니, 긴 세월을 통해 어쩌면 절로 습득되는) 기본 중 기본이다. 나는 여태 논리가 명확하면 상대가 설득된다고 생각했다. 설득적인 구성과 논리가 탄탄하면 의식적이고 애를 쓰는 이해의 노력 또한 상대적으로 덜할지 모른다. 그런데 나머지를 채워 주는 건, 논리 이전에 상대에 대한 공감이지 않겠나 싶어진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결론은 이렇다. 기획이란 상대의 입장에서 질문을 다시 던지는 일이다. 발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우리가 매일 처하는 상황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포장해서 전달하려는 노력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짚어주는 섬세함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말하는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여야 한다. 상대에 대한 이해는 우연히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다가가는 태도이자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