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리더에게만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생각 뒤에는 직급이 가진 힘이나 조직 내 위치에 따른 주종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인정(?)하는 리더는 상위 직급자 몇 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그런 소수의 리더들에게는 그들만의 리더십으로 구성원을 이끌고 회사가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쉽게 이렇게 결론짓는다. 아, 리더는 내 상사니까 할 일을 부하직원인 나에게 지시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리더십이라는 스킬로 나를 이끄는 거겠지.
궁금해서 조금 검색해 보았다.
리더 = 사람. 역할이나 타이틀을 의미 (who)
리더십 = 프로세스, 능력, 영향력 (how & why)
영어에서 -ship이라는 접미사는 어떤 자질, 상태, 능력 등을 의미하는 추상적 개념이다. 따라서 꼭 리더의 위치나 역할이 아니더라도, 리더십은 누구에게나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을 가리킨다. 어떤 일을 자기 주도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시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그게 바로 리더십이라고 정의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리더십은 ‘리더’라는 직책을 가진 몇몇 사람만이 가지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리더 직급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리더’라는 단어가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불필요한 오해의 모자를 씌운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의미를 추상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구체적인 대상을 떠올리는 순간, 리더십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방향을 잃기 쉽다. 마치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주인이 아닌데 왜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거냐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이라는 구체성을 띈 단어가 개념적 단어인 '의식'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직 내에서 공식적으로 ‘리더’가 아니라면 리더십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은 리더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만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실제로 한 주요 과제의 ‘리더’였던 A는 팀 내에서 자신의 연차가 낮고 나이도 어려 구성원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인 맥락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연차와 나이, 혹은 위치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 장벽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핑계 삼아 본인이 발휘해야 했던 리더십을 회피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PMO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상사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OO님은 팀장이나 상무급의 시선에서 일을 바라보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처음엔 이 말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직급이 다른데 어떻게 내가 그들처럼 생각하고 일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영향력은 그들과 다르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다른데 왜 그렇게 해야 하죠?
이랬던 내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회사의 조직 체계에 따라 권한과 역할,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건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다만 나는 다양한 부서를 만나야 했고, 그들이 가진 관심과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했으며, 그 안에서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구조화해야 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일차원적인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성격이었다. “시키면 알아서 잘해볼게요”가 통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내 상위 직급자들을 참여시키는 고민과 노력도 (나의) 리더십에서 나왔고, 부서 간 조율을 위해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는 행동 역시 (나의) 리더십에서 나왔다. 일에 집중 하니, 직급과 부서의 중간에서 발현해야 할 리더십이 다르게 보였다.
과제든 프로세스 구축이든, 내 일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의미를 상사와 동료에게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설득하여 결국 일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모든 행동과 사고가 바로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리더십이라는 짧은 단어가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오히려 불친절해 보인다.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많다는 안타까움도 생긴다. 그렇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일을 하는 데 있어 리더십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조직의 리더가 아니라고 해서 불필요하다거나 가질 수 없는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