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답보다 어려운 건 감정 다루기

by nay

일을 한다는 건 여러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고려하고 다루며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가지 요소에는 일이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돈과 시간, 사람이 포함된다. 연구비를 더 받아서 즐거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성과가 나오도록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부담이 주어진다. 시간도 비슷하다. 마냥 오래 연구개발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공을 들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돈과 시간은 투자 대비 회수의 정도와 강도에 대한 부담이 있을 뿐 특별히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는 아니다.


사람이라는 요소는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나의 경우,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 보니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 리더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해도 수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부터, 자기 고집을 어지간하면 내려놓지 않는 사람, 항상 자기주장이나 의견 대신 윗사람의 말을 우선해서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까지..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다음에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로 답을 해야 한다면, 그땐 나의 선호도에서 차이가 선명히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프로젝트 리더 K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진 자신의 기분(감정)이 정당한 것인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A에게 프로젝트의 세부 과업을 맡겼는데 (기대와 달리) A가 가져온 결과가 너무 기계적인 업무 처리였다. 그래서 조금 더 분석을 요청했다. 그걸 통해 인사이트를 얻어주길 바랐는데, 그저 단순히 생성형 AI를 한 번 더 돌려본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K의 궁금증은 복합적이었다. A의 대응이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화를 내도 될만한 것인지, 자신이 A에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일단 답을 들었으니 A에게 더 일을 주는 것이 맞을지 등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K가 리더로서 멤버인 A에게 가진 일종의 실망감과 그로 인한 화남에 공감했다. 사실 프로젝트 리더만큼, 아니 그의 반이라도 깊이 있게 고민하는 멤버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A의 다소 ‘기계적인’ 답변과 업무 처리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물어본 것은 K가 A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충분히 그리고 상세하게’ 정의해 줬는지였다. 간혹 ‘그냥 열심히 잘해주세요’라는 불분명한 정의가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인데, 그리고 회사 경험도 많은데 ‘알아서 잘 해오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질 때가 많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보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역할을 규정하고 전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건 프로젝트 참여자(멤버)에게 ‘당신에게 내가 기대하는 것은 OOO입니다’를 전달하여 몰입도를 높이고 명확한 기여의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교하고 정확한 업무 범위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많은 권한과 자유를 주기 바라는 경우도 있다. 개인 차에 따른 부분은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나는 솔로> 29기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호감을 보였는데, 아쉽게도 그녀는 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계속 들이대고 관심을 보이는데 ‘확실한 거절의 의사’를 보이지 않으며 애매하게 굴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신이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불필요한 오해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쪽과, 말했다고 믿는 쪽 사이의 간극은 늘 이렇게 생긴다. 업무든 일상이든 나는 충분하다고 느껴도, 받아들이는 상대는 그렇지 않은 것이 다반사다.


그러나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프로젝트 리더가 매사 이런 반응에 대해 감정을 넣으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꽤 많은 경험을 해 본 리더였는데도 그렇다. K는 이렇게 답답하기보단 차라리 혼자 일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럴 거면 우리가 왜 프로젝트로 일을 만들어서 (함께) 하겠어요?”


일을 한다는 건 이 많은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건 힘이 되지만 사실 큰 짐이 될 때가 더 많다. 차라리 혼자 하고 말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생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상황에 따라 어디에 힘을 주고 빼야 할지 감을 잡게 되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며 자신의 감정이 올바른지, 정당한지 고민하는 K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경험과 과정을 통해 그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리더십은 문제의 답을 내리는 능력보다, 감정을 조급하게 처리하지 않는 자기 관리의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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