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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09. 2017

회사 연구원이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조언

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해서 대학은 기초과학(생화학)으로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독성약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뼈 속까지 이과생이다. 학위를 받고 아무 것도 모른 채 회사에 취직해 사회에 던져졌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회사라는 곳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연수 원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 입사 동기들과의 우정과 추억, 이젠 나도 사회인이 된 것이라는 우쭐함 같은 복잡한 마음이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연수가 끝나니까 연수비를 봉투에 담아서 현금으로 한 사람씩 나눠주는 때였다. 아니, 이런 일에 돈을 주네? 하긴 면접을 보러 왔다 갔다 해도 면접비를 주었으니까, 역시 회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부서에 배치를 받고 인사를 오니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당시 팀장님이 ‘나박사는...’ 하면서 어디서 무엇을 배웠는지 팀원들에게 대신 자기소개를 해주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었다. 나보다 나에 대한 신상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그분을 보며 회사는 뭔가 다른 세상이라는 감탄을 또 한 번 했다. 


다만 연구 생활은 대학원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출퇴근 시간이 있었지만 당시 회사 기숙사에 살던 터라 퇴근의 개념도 모호했던 건 사실이다. 전공 분야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피부에 대한 이해와 공부를 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실험은 회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이면 세포가 잘 크는지 확인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실험을 했다. 실험실의 분위기, 실험도구와 기기 모두 학교에서와 비슷했다. 팀장님을 빼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 경우는 입사하자마자 팀에서 할 일이 딱 정해져 있었다.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도 없이 6개월 넘게 열심히 효능 소재 찾는 업무(스크리닝이라고 보통 부른다)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실험만 하면 아무 문제도 갈등도 없었다. 사실 입사 초기에는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시절이다.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적응,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정립 그 자체가 내 지상과제였다.


회사에서 겪은 낯선 경험의 기회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당시에 식스시그마 문화를 열심히 내재화하려고 노력하던 때라 의무 과제 같은 것이 있었다. 신입인 나에게 과제가 할당되어 몇 개월 동안 위에서 말한 스크리닝 업무를 꽤 타이트하게 관리하면서 진행해야 했다. 기쁘게도 결과가 잘 나왔다. 내부적으로 몇 번의 경합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최종 결선에도 올라서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전에 어쩌다 모인 간식타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는 좋겠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금수저라는 표현도 그때 처음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입사원이 사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아니 뭐... 난 그냥 시킨 일을 열심히 했고 결과를 잘 얻은 것뿐인데? 내가 아무 잘못이 없고 의도하지 않아도 구설에 오를 수 있음에 당황스러 웠다. 왜 그런 얘기들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 오니 생각보다 다른 사람, 다른 부서, 다른 조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참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아주 단편적인 회사생활의 예시다. 시기나 질투가 많다는 점이 아니라, 연구를 잘하는 것 외에도 고려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많고 복잡하다는 얘기다. 대학원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사는 곳에 있는 기본적인 갈등은 당연히 있다 해도 다들 자기 졸업과 연구 테마에만 집중하면 되는 곳 아닌가.

그런 일들을 시작으로 좌충우돌, 사회 초년생으로서 겪을 수 있는 또는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연구는 당연히 열심히 했다. 그런데 연구만 잘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직 사회에서 지켜야 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배웠다. 회사의 의사결정이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알게 되었다. 연구조직의 전략에 대한 고민도 해볼 기회가 있었다. 작은 조직을 운영하면서 리더십을 연마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보람된 순간도 있었다. 연구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결국 사회 생활을 하는 회사원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공부 밖에 모르던 순진한 학생에서 사회를 알게 되어 갔다. 





어느새 15년이 지나갔다. 20년 넘게 회사를 다니신 분, 나보다 더 승진해서 임원급으로 계신 다른 분들에 비하면 내 경험은 여전히 짧다. 그래도 지금의 연차가 되니, 회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후배들을 위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이공계 대학 원을 졸업하고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의 어설펐던 과거를 회상하고 거기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진 것이다. 내가 여러 회사와 업무를 경험해 보았다면 더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겠으나, 여태 같은 직장에서만 있다 보니 다분히 편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대부분 회사라면 대동소이하지 않겠나 추측해본다.


이 브런치북에는 특히 연구직 회사원들을 위한 글을 몇개 모아 두었다. 책으로 엮은 것에는 연구직을 포함해 모든 회사원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 그리고 회사 연구원들을 응원하며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제 책을 읽고 추천해주신 브런치 작가이자 <회사언어 번역기> 저자, Peter님 서평입니다>


<저의 이야기들을 엮어 책으로 발간 하였습니다. 직장인 여러분의 공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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