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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13. 2017

회사 연구소는 대학원과 무엇이 다를까

직장 연구원을 위한 조언 - 1 

학생과 교수, 후배와 상사
대학원 생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텐데 저는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를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 학부 시절엔 잘 모르는 것이 바로 교수님의 진짜 모습일 것입니다. 학부생에겐 나긋나긋 세상 친절한 교수님도 대학원생들에겐 무섭고 어려운 존재랍니다. 왜냐하면 교수는 학생의 학위 취득(졸업)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지인 중에 지도 교수와이 잘못된 만남으로 1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학위에 바친 경우도 있습니다. 


지도 교수가 의도하진 않더라도 일종의 주종관계가 형성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고요. 학생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제가 대학원생이었던 20년 전이나 2020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오죽하면 ‘건강한 연구실’을 선정하게 되었을까요 (관련 내용은 이 장의 맨 마지막을 참고해 주세요).


회사에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상사-부하의 관계입니다.이제 졸업이라는 이슈와는 무관하지만 상사의 파워는 지도 교수와는 또 다른 영역에서 발휘됩니다. 회사에서는 보통 1년마다 업적과 역량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요, 본인 스스로 평가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사람이 바로 내 상사입니다. 평가 결과에 따라 회사에서 내 입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사고과는 차곡차곡 쌓여 내 이력이 되거든요. 경제적으로는 좋은 사원으로 인정 받으면 비슷한 동기들 보다 연봉도 많이 오르고, 남보다 빨리 승진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행동과 성과지만 그걸 인정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상사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상사는 내 회사 생활의 멘토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선배와 처음부터 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꼭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상사를 한두명 찾아보도록 하세요.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
학부 학생일 때는 배움의 과정에 대한 지불을 합니다. 대학원생은 준사회인입니다. 연구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연구를 많이 참여하면 인건비를 그에 따라 지급 받습니다. 하지만 일단 학교에 등록금을 내는 것이 기본입니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면서 학위를 받는 것, 즉 미래를 위한 가치를 쌓습니다. 
그러나 회사에 오면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25일이 되면 다시 리셋 된다고 하지요 (25일은 보통 회사들의 월급날). 월급에 길들여지면 다른 생각하다가도 다시 정신 차리게 됩니다.


연구소의 연간 예산 중 인건비의 비중은 상당합니다. 연구조직은 대게 기본 석사 이상의 인력이 대부분이라서 급여도 상대적으로 높거든요. 회사는 그러면 열심히 돈만 주고 고급 인력을 부린다고 기뻐할까요? 아니죠. 받는 것 이상의 퍼포먼스를 요구합니다. 돈을 받으며 일을 하니, 내 실력을 연구개발 성과로 보여줘야 합니다. 성과가 좋으면 흔히 보너스라고 부르는 PS(Profit sharing) 나 PI(Performance incentive)를 더 많이 받을 기회가 높아집니다 (반대로 성과가 낮은 해에는 보너스는 기대도 말아야 하지요). 부서에 따라 연간 목표와 보너스에 대한 지급 기준이 다릅니다. 그래서 비슷하게 입사한 사람들 사이에도 부서의 차이로 인해 연간 총 소득에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회사는 돈에 민감합니다. 모든 자원(사람, 시간, 공간, 기회 등등)을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합니다. 종이컵 하나라도 허투루 쓰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항상 연구개발 비용을 줄이는 것에 신경씁니다. 어떤 제품은 개발 원가 몇 십원 인상이 꼭 필요한지 끝없이 고민하는데요, 원가 몇 십원의 차이가 제품으로 개발되어 판매될 때는 몇 억원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지요. 어차피 쓸 수 있는 자원은 늘 제한 되어 있어요. 누구나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따라서 회사의 연구원이라면 그것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대학원 생활과 가장 큰 차이는 회사에서 연 단위로 업무를 시작하고 종료하는 것입니다. 대학원 과정의 정점은 졸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실험과 공부를 통해 얻은 성과는 궁극적으로 졸업요건을 충족하기 위함이지요. 보통 그 기간이 최소 2년(석사)에서 길면 6-7년(박사)이 걸립니다. 따라서 일년 마다 성과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어요. 
회사는 앞서 1년에 한번씩 평가와 정리가 있다고 했지요? 물론 장기 과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3년 이상 가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설사 3년 짜리 장기 과제라고 하더라도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경우는 드물지요. 장기 과제일지라도 매년 연말, 연간 성과에 대해 보고합니다. 중간 성과는 어떤지, 목표 결과들을 잘 얻고 있는지, 진행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합니다. 내 과제를 평가하는 사람은 단지 직속 상사만이 아닙니다. 뒤에서도 소개 하겠지만 회사 내에는 다양한 부서들이 존재하고, 이 중 어떤 부서는 연구소 전체 업무, 과제에 대한 당위성을 항상 제로 베이스에서 판단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는 

효율성입니다. 투자 대비 이익”


처음엔 이런 과정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연구결과가 일년 마다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다분히 관리자 중심의 생각과 판단이라고 보았습니다. 연구는 세일즈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회계년도에 맞춰 입출금을 계산하고 성과 평가가 이뤄질 수 밖에 없더군요. 이해를 할 뿐이지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대신 중장기 연구들을 어떻게 연간 단위로 쪼개어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한지, 연구비의 확보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분명 상사가 ‘어, 일 머리가 좀 있는데?’하는 연구원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전에 썼던 글을 재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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