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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을 든 여자

외국인 동산 집행은 어렵지

by 대우

Женщина с кухонным ножом, '칼을 든 여인'이란 러시아어다



#1. 오해

"법원 집행관입니다.", "김 00 댁 아닌가요...",


여인은 안방 침대 위에서 이너웨어만 입은 채, 대형 벽걸이 TV를 보며 견과류를 먹고 있었다.

침대 커버 위에 견과류 껍질들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집 안에 사람이 계셨으면서 왜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나요?.",

"저기요... 윗 옷을 좀 걸쳐주시죠."


집행관이 강제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을 몰랐는지 그녀는 당황해하면서도, 다짜고짜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갑작스러운 이 황당 시추에이션은 뭔가?! (머리 긁적긁적)


"죽여..., 죽인다 나가..." 칼로 찌를 듯 집행관의 얼굴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말투나 생김새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남미 쪽 국적을 가진 여성으로 보였다.

집행 대상 채무자 김 00의 집은 오륙도 바다가 보이는 고층의 넓은 아파트라, 우리는 그녀를 외국인 가사관리사로 생각했다.


그녀에게 다시 한번 우리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신분을 밝혔다.


"채무자 김 00 씨를 아세요.", "김 00 씨와는 어떤 관계예요" 물었으나, 그녀는 몰라 몰라만 되풀이했다.

강제 집행 할 때 가장 당황되는 순간, 외국인 그것도 영어가 아닌 비영어권을 사용하는 외국인이다.


"Where are you from", "Where are you from..."

도대체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요,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물어보았으나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그녀의 국적을 알아내, 통역 앱 파파고 등을 이용해 대화를 시도해보려 하였으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식으로 고함만 쳤다, 헛수고였다.


다시 한번 되뇌는 사자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할 때다.



#2. 실마리


그녀는 식칼로 찌를 듯 겁을 주며 "몰라... 나가, 집 밖으로 나가란 말이야", "안 그러면 죽여."

"이 새키들 왜... 왜 우리 집 들어왔어.", "이 집은 어머니가 주크(사망)면서 주고 간 거야."


어눌한 발음이지만 그 집에 살고 있고, 시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남긴 집과 가재도구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 정도 답변이라면 우리가 왜 왔는지는 쪼끔이라도 이해는 하고 있지 않을까?


그녀와의 대치 상태는 계속되었고, 그날 강제집행 예정건수가 10여 건이나 남아 있어, 그곳에서 무작정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었다.

차회 계획된 채권자나 증인들이 기다리고 있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여인이 더 흥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급하게 112로 경찰에 신고하였고, 곧 관할 동네 지구대 여자경찰 1명과 남자 경찰 2명이 출동하였다.


시간이 없으니 경찰을 통해 실마리를 풀어보자.



#3. 세계 공통 "하얀 거짓말"


식칼을 든 외국인 여성과 대치 중이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도 방검복을 입었음에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중 선임 여성 경찰관 k에게 집행관 신분을 밝히고, 채무자 김 00에 대해 정당한 집행권원을 근거로 강제집행 하러 왔고, 인터폰과 수회 문을 두드렸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아, 민사집행법 제5조 등에 따라 증인 2명 입회 하에 강제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현재까지 대치하고 있게 되었다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경찰관이 출동하였음에도 이 시키, 저 시키, 괴물 같은 새키... 등 알고 있는 한국말 욕들을 모두 토해냈다. 우리나라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서 욕부터 배운 걸까.

경찰관이 제지해도 막무가내로 욕을 하다, "폴리스~폴리스~경찰~경찰"하자 겁이 났는지 그때부터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칼도 부엌으로 급하게 가더니 바닥 구석에 던져 숨겼다.


경찰관 k는 계급이 경사였다. 그 계급이라면 최소 10년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경찰관이고 잘 마무리를 해줄 것이리라.


K 경찰관은 정당하게 강제집행하는 집행관에게 식칼을 들고 찌를 듯이 위협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다.

그런 행위는 어떤 나라든 법에 위반되는 행위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라고 설명한 후, 그녀의 국적이 러시아이고, 채무자 김 00 씨는 남편이라는 정보를 확인하였고,

그녀가 칼을 들고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시어머니가 상속해 준 채무자의 집이고, 그 집과 가재도구는 자기 것이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남편 김 00 씨가 사업을 하다 힘이 들어 채무가 많았고, 살고 있던 아파트 등 재산도 채권자들에 의해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대충은 알았을 것이고, 집행관이 방문해 가재도구를 압류하려 한다는 사실도 대략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저항한 것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하얀 거짓말이리라. 용서해 줄수도 있는 하얀 거짓말. 세계 공통으로 쪼끔은 이해가 되는 하얀 거짓말.


출동한 경찰관은 대상자가 칼을 들고 공무집행 중인 집행관을 찌를 듯 협박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였으면 좋을지 문의했고,

우리는 오늘 유체동산 압류 집행을 진행할 것이고, 채권자와 합의되지 않거나 집행 취하가 되지 않으면 재방문하여 경매를 진행할 것이며, 또한 채무자 김 00 씨가 채무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갈 수 있고, 경매 진행 절차 과정에 또 다른 집행관이 임차인 조사 등 부동산현황을 조사하러 올 수 있고, 감정가 산정 등을 위한 감정평가사도 방문할 수 있으니,

오늘 같이 식칼을 들어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엄정한 주의를 주게 한 후, 오늘은 그냥 좋게 마무리해 달라고 했다



#4. 압류표목인 빨간딱지를 붙이다


그녀의 남편 채무자 김 00 씨에게 전화하게 한 후, 강제집행을 해야 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주거지에 있는 유체동산에 빨간 압류표목을 붙였고, 2주 정도 기간을 줄 테니 채권자와 협의를 해보라고 권유하고, 집행 취하가 되지 않으면 강제 경매를 진행하러 재방문하겠다고 파파고의 어설픈 번역으로 통지하였다.


집행관은 채권자의 편도 아니고, 채무자의 편도 아니다.

채권자가 법원의 재판을 통해 선고한 판결문 등이나, 변제 이행기간이 지난 공정증서 등을 근거로 집행관사무소에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채무자가 대통령이 되었던 그룹 회장이 되었던 채무자의 주거지에 압류를 하고, 경매를 통해 돈으로 환가를 해서 채권자에게 배당을 해주는 것이 집행관의 책무다.

칼을 들고, 망치를 들고 설쳐도 설득과 인내를 통해 강제집행을 해주는 것이 집행관의 일이다.



#5. 당사자들의 해결방법 찾아보기


먼저 채무자는 채권자와 합의를 통해 집행취하를 받거나, 채무자의 배우자는 공유자로서 1/2의 지분이 있으므로 경매 환가대금의 1/2를 지급 요구할 권리가 있고, 배우자가 우선매수 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여 경매최고가의 반값으로 매수할 수 있으며, 배우자가 우선 매수하여 점유할 경우 배우자 개인 물건이 되므로, 당분간은 채무자의 채무가 많아도 그 동산을 압류할 수 없다(민사집행법 제190조, 제206조, 제221조 제1항, 140조 참조).

* 경매 이후 필요 가재도구(가전제품)를 구입해 사용하면 재집행당할 수 있으므로 렌트나 임대로 사용하는 게 좋을 듯.

그래서 채권자가 압류를 담보로 많은 채권액 변제를 요구하거나, 괴롭히면 배우자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여 1/2 값으로 정리하는 것도 유리한 해결 방법 중 하나이다.


채권자는 빨간딱지를 붙임으로써 즉, 압류에 성공하므로 채무자에게 변제를 압박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고, 대개 보통 사람들은 사용해 왔던 가재도구가 경매로 헐값에 처분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해 상당한 채무를 변제받을 수 있으며, 집행으로 인해 채권의 소멸시효가 연장될 수 있으며, 이번 집행으로 배당받은 금액만 채무액이 줄어들어 채권은 그대로 존재하므로, 추가로 언제든지 채무자의 주거지에 부동산경매나, 회사의 급여, 은행 계좌 등을 압류하여 재산권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 등 여러 추심 방법이 있다.



#6. 종결과 반전


"집행관님 칼 들고 설치던 외국인 아줌마 압류 사건 집행취하서 접수되었습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의가 잘되었나 봅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는 집행관에게 담당직원이 밝은 얼굴로 다가와 집행취하 소식을 알렸다.

잘되었다..., 그 외국인 여성은 시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집과 가재도구를 목숨처럼 생각해, 재방문하여 경매를 진행하고, 동산구매업자들이 가재도구를 빼간다면 다시 한번 칼을 들고 설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잘되었다.


반전이다.

며칠 뒤, 같은 집행관 사무실에 근무하던 직원이 우리 사건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도 그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데, 그 외국인 여성 정말 아파트에서도 내놓을 정도로 못됐다고 소문났는데요... 주민들에게 쌍욕도 잘합니다.


세계 공통어 하얀 거짓말이 빨간 거짓말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도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려다 보면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어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지라며 이해해 보려 하지만,

그날 집행관에게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부엌으로 가 함부로 식칼을 들고 나와 찌르겠다고 설치는 게 ㅎㅎ.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그녀에게 우리 당한 것 맞지, 그지...,


외국인이라서 좀 더 배려를 보여주겠으나, 다짜고짜 식칼을 들고 찌르려고 하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될 행위다.

중국이나 미국 같았으면 체포되거나 총을 맞았을 일이다.


그래도 집행과정에서 누구 한 사람 다치지 않고 잘 해결된 것에 대해 당사자, 경찰관 등에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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