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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May 15. 2023

소박한 이사

낮고 작아도 가치 있는 삶

<poem_story>


비 오는 날

양산 내원사 노전암으로 오르는 작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부딪치는 우산은

음표 없이, 소리 없이 시작되는

합창입니다.

  

숲은 습기를 잔뜩 머금었습니다.

피톤치드 냄새는

5월, 6월의 아카시아꽃 냄새,   

영화 볼 때 그녀와 먹던 캬라멜 팝콘 냄새까지 섞여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숲 속은

마음을 위안하고 치료하는

초록 초록한 병원입니다.

 

지그재그 좁은 산길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그 산길은 비가 오는 날은 걷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발자국 소리인 줄 알았는데,

발을 끄는 듯한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났습니다.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멀리 앞을 보았습니다. 저 말고 없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오르는 산길 오른쪽 숲 속에서,

넓고 튼튼한 나뭇잎에 오르는 커다란 밤색 집을 등에 진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는 틈에 나뭇잎을 타고, 산길 왼쪽 숲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정말 소박한 이사였습니다.





   <달팽이 이사>

     

숲 속에 비 내리니

키 작은 숲 속은 이사철.


내 한 몸 뉠 수 있는

집 한 채 등짐 지고

이곳 숲 속에서 도로를 건너

저곳 숲 속으로

빗물에 흘러 흘러

잎새 타고 떠나는 소박한 이사.


빗물 흐르다 닿는

어느 땅, 어느 숲에

내 몸바닥 닿으면  

그곳이 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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