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작아도 가치 있는 삶
비 오는 날
양산 내원사 노전암으로 오르는 작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부딪치는 우산은 음표 없이, 소리 없이 시작되는 합창입니다.
숲은 습기를 잔뜩 머금었습니다.
피톤치드 냄새, 5월 6월의 아카시아꽃 냄새,
영화 볼 때 그녀와 먹던 캬라멜 팝콘 냄새까지 섞여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숲 속은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초록 초록한 병원입니다.
지그재그 좁은 산길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그 산길은 비가 오는 날은 걷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발자국 소리인 줄 알았는데, 발을 끄는 듯한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났습니다.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앞을 보았습니다. 저 말고 없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오르는 산길 오른쪽 숲 속에서,
넓고 튼튼한 나뭇잎에 오르는 커다란 밤색 집을 등에 진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는 틈에 나뭇잎을 타고, 산길 왼쪽 숲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정말 소박한 이사였습니다.
<달팽이 이사>
숲 속에 비 내리니
키 작은 숲 속은 이사철.
내 한 몸 뉠 수 있는 집 한 채 등짐 지고
이곳 숲 속에서 도로를 건너 저곳 숲 속으로
빗물에 흘러 흘러 잎새 타고 떠나는
소박한 이사.
빗물 흐르다 닿는 어느 땅, 어느 숲에
내 몸 닿으면 그곳이 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