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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May 15. 2023

나의 동료놈, 동료님

힘들어 하는 직장 동료에게  


  코스닥 상장에도 실패한 회사는 망망대해에 태풍으로 생긴 수백 미터 높이의 파도를 떠다니다가, 곧 물속에 잠길 것  같은 작은 돛단배 신세다.


대표는 직원 출근시간보다 1시간 늦게 출근하면서도, 늘 찌푸린 얼굴로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음에도 당당했다.

대표는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오만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한 것처럼, 오늘따라 더 오랑우탄 같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곧 대표 방으로 달려갔던 부장이 손마이크를 해서 아~~ 아~ 큰 목소리로 주위를 환기시키며, 대표님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다며, 퇴근 무렵인 오후 4시쯤  과장급 이상 긴급 대책 회의를 시행한다며 소집명령을 내렸다고 전한다.


영업부서 기획담당 김대리가 영업부진 현황, 원인, 대책에 대한 회의자료를 만들어, 오후 3시까지 10 여부를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고, 오전에 각 팀들은 기획 회의자료를 만들 수 있도록 자료를 김대리에게 건네주라는 지시였다.


기획담당 과장과 김대리는 갑작스러운 임무 부여에 가슴이 답답한지 울상이다.

특히 실무 자료 작성자인 김대리는 민감한 회의 내용과 갑작스러운 자료 작성 업무에, 기가 질린 듯 몇 분 간 자리에 앉아 멍하니 무늬 없는 석면 덩어리 천장만 바라본다.


얍삽한 이웃 직원 정대리가 탕비실에서 타온 믹스커피를 내밀며,

"우리 김대리 어떡하냐... 화나지, 갑작스럽게 뭐 그런 민감한 주제를 몇 시간 내로 해내라고 숙제를 내냐... 쓰~벌,  김대리 달달한 커피 한잔하고 힘내."

자기 숙제가 아니니 너무 좋다는 듯 여유 있게 말하는 정대리가 더 미운 듯,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것처럼,

"가세요...,  가..."라며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걸 참느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대리는 점심도 사무실 내 탕비실에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영업부 각 팀에서 중구난방으로 가져다주는 영업 통계 자료와 사업계획 자료 및  성과자료를 정리하고, 회의자료를 만들고 탈고하느라 오후를 하얗게 보냈다.


김대리의 회의 자료 완성이 늦어져 회의 지시 시간보다 30분 늦게 시작되었고, 회의는 끝이 나고 늘 그렇듯 대표 등 임원과 부장급 이상은, 김대리가 진땀을 뽑아 완성한 회의자료라는 사실은 잊은 채 인상만 찌푸리며 회의실 문을 나섰다.

직급이나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모든 게 당연한 것인가.


김대리를 바라보는 짓은, 김칫국이나 물 한 방울 없이 타박고구마를 급하게 먹다가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오늘따라 동료, 나의 동료님 김대리가 불쌍해 보였다.




             <나의 동료님>


푸석한 얼굴로 동료 직원이 회의실로 옵니다.

자료를 한 아름 품었습니다.

꽃다발을 안은 것이라면 좋을걸 생각합니다.


자료는

매출 및 영업이익 감소 원인, 비교된 실적 통계, 실적 향상방안

거기에 참기름처럼 짜낸 열정과 탈고를 거친 정성이

설탕 적게 넣고도 단맛을 낸 브라우니 빵입니다.


여러 묶음으로 복사한 자료에는

숭고한 고단함이 숨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회의는 타박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게 끝났고

찌푸린 얼굴로 나가는 임원과 상사에게

값싼 향수 같은 짙은 꼰대 냄새가 풀 풀  풍겼습니다.

수고했어,  고마워,

쉬운 말 하나 뱉지 못하는 입들은

밥과 술만 먹을 때만 쓰는 도구인가요.


허탈해하는 후배에게

감사해, 수고했어라고 하자

며칠 동안 물을 갈아주지 않은 장미꽃처럼

시든 밝은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그가 너무 대견했습니다.

5월 햇살처럼.


후배는 내게

"투자한 비트코인과 주식이 곧 대박 날 거예요,

모든 것 참을 수 있었요"라고 웃습니다.


네 말대로 될 거라고 위로하는 나는

승진에 목 메어 있고

대박 날 비트코인이나 주식도 없기에

초라함이 후배보다 더 모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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