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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 Jan 14. 2024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책을 읽고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보기

좋은 책을 찾았다.

제목부터 눈에 쏙 들어오는 게 말할 것도 없이 그냥 내가 지금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드는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마치 상담이나 어떠한 테라피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힘들 때마다 도서관을 누비며 그 당시의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필요한 책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매었던 게 그저 좋은 취미여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책은 사실 술술 읽어 내려가기 쉽지 않다.

고민과 생각의 회로를 끊임없이 돌려 설명되어 있는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다음 문장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면치기 하듯 후루룩 넘어갈 경우 얼마 못 가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몇 번이고 이해될 때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 주로 읽던 소설이나 에세이와는 달리 한 페이지를 보는 데에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 삼키듯 읽어 내려가며 무한감탄과 공감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새해 1월부터 에리히 프롬 책을 읽고 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는 이 질병을 권태,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풍요롭지만 아무 기쁨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느낌이라 부른다. (p28)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회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p28-29)


우리는 영원한 소비자이다. 우리는 담배, 술, 강연, 책, 영화, 인간을 소비한다. 우리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필요로 하는 사랑도 아이에게 필요한 신제품처럼 이야기한다. 우리는 엄청난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수동적 소비자이며, 젖병과 사과를 기다리는 영원한 신생아이다. (p31-32)


우리는 소비하고 고대하지만 우리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실망한다. 우리는 사물을 생산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 사물과의 관계에서조차 - 극도로 비생산적이다. (p32)





첫 챕터인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만 겨우내 다 읽었는데도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이제껏 어렴풋이 느껴왔던 풍요로운 삶 속의 이질적인 허무함과 권태로움을 이렇게 말해주시다니. 

너무 속 시원하고, 감사하고 또 벅차올라 브런치에 독후감(?)을 안남길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여러 번 언급해 왔듯 분명 부족함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고 또 기쁜데. 왜 모래처럼 내 하루하루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계속 받았었는지. 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불만감에 휩싸여 분노와 억울함에 가득 차 살았었는지를 이제는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뿌리 깊었던 실체를 인지하고 꺼내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시원한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런 책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충분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의 내면과,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되짚어보고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에서 이미 벌써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덧. 

그래도 내가 많이 존경하고 또 좋아하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셨는지 얼굴(?)은 알고 지내고 싶어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칸트나 니체 같은 옛날 이미지(?)로 상상했었는데 이렇게나 멋짐이 폭발하는 흑백 사진이 있다니! 커버이미지로 무조건이다.



거의 할아버지 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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