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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씨 Mar 29. 2017

인생의 20년을 크루즈에서 보낸다면?

크루즈에서 얼마나 일했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 "3년이요"라고 대답하기가 사실 부끄럽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특히 크루즈에서는 3년은 길지 않은 기간임은 확실하다. 5년은 기본이며, 하물며 20년 이상을 크루즈에서 근무하신 승무원들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이 아닌, 승객으로 크루즈에서 20년을 보낸다는 걸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승무원이야, 직업이기 때문에, 10년, 20년, 하물며 50년 이상을 배에서 보낸 분을 본 적도 있지만, 승객이 이 많은 세월을 배에서 보낸다고 한다면, 아마 첫 반응은 "와! 진짜 돈이 많나 보다!" 일 것이다.



몇 주전 뉴욕타임스에서 올해 67세로 크루즈에서 승객으로 20년이란 시간을 보낸, 지금까지 950번의 항차와 7000일의 일수를 채운 Mr. Salcedo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이미 로열캐리비안 크루즈 안에선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신 분이기도 하며, 이 분이 주로 승선하시는 프리덤 오브 더 시즈(Freedom Of the seas)는 마이애미의 포트 로더데일을 모항으로 운항하는 크루즈인데, 프리덤호 뿐만 아니라, 마이애미 노선을 한 번쯤은 배정받아 본 승무원이라면 이분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정도이다.



크루즈 회사마다 멤버십 제도가 있다.


내가 근무하는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에는 골드, 플라티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플러스, 피나클클럽과 같은 멤버십 등급이 있는데, 이는 크루즈를 탄 횟수, 그리고 크루즈 노선의 일수(Night)를 기준으로 멤버십이 나뉜다.  그리고 본사에는 이 멤버들만 따로 관리하는 부서도 있으며, 크루즈 안에는 멤버들을 케어하는 로열티 엠바 서더(Loyalty Ambassador)라는 승무원 포지션도 있다. 아무리, 멤버만 따로 케어하는 승무원이 있다고 해서, 다른 승무원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음 항차를 시작하기 전, 게스트 서비스 매니저(Guest Services Manager)는 다음 항차의 특별한 행사, 내부 미팅, 인사 변동, 승객들의 국적, 연령대, 그룹 유무 등 다음 항차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를 브리핑한다. 브리핑 중 다음 항차에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플러스, 피나클 멤버들이 승선을 한다는 소식이 있으면, 직원들은 긴장을 하고, 손님의 객실 번호 등 관련 정보를 외운다.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평소처럼 매니저의 브리핑을 듣다가, 매니저가 다음 항차에 피나클 멤버가 있으니 각별히 신경을 써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음날, 평소와 다름없이 승선일(Embarkation day)에 분주히 승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피나클 멤버 승객이 승선을 하자마자, 무전기로 매니저의 신호가 들려왔다.


"He is onboard."


그분의 시 패스 카드에는 '피나클'이라는 글자가 인쇄가 되어 있어, 그분이 시 패스 카드를 보일 때마다 승무원들은 다들 신기하기도 하며, 궁금하기도 해서 많은 질문을 한다.


"크루즈를 몇 번 타셨었어요?"

"어느 크루즈 쉽을 타보셨나요?"

"어느 배가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당시 나는 그룹&이벤트 코디네이터(Group &Event Coordinator)로 크루즈 내 그룹을 담당하고, 각종 이벤트(결혼식, 회의, 칵테일파티 등, 일부 소, 대규모 그룹만을 위해 크루즈 내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를 담당하는 포지션이었는데, 데스크 직원들이 미팅 중이거나, 인력이 부족할 때에는 헬퍼로 데스크에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날은 데스크 직원들이 내부 미팅이 있어, 잠시 프런트 데스크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피나클 승객이 다가오셨다.     



"다들 미팅 갔나 보네, 데스크 커버하는 거 보니, 아님 너 오늘 포트 매닝(port manning)이니?"


'뭐지 이손님?'

어떻게 다들 미팅 갔다고 생각을 하셨으며, '또 포트 매닝은 또 어떻게 아시는 거야?'

내부 사정을 다 아는 승무원 마냥 너무나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포트 매닝(port manning), 혹은 IPM이라고도 한다. 해사법에 의해 시행되는 규정 중의 하나이다. 크루즈가 부두에 정박해 있으면, 승무원들은 각자 스케줄에 따라 배에서 내려 관광을 할 수도 있고, 아님 배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각자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포트 매닝인 날에는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며, 선박에서 예상치 못한 응급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일정 수의 승무원들이 스탠바이를 하고 있어야 한다.



'포트 매닝을 알다니.. 이 승객 만만치 않은데?'



그 승객과 대화를 나누면서 크루즈에 관해 그리고 승무원들의 생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랐다. 승무원들만 아는 단어, 액티비티 등, 일반 승객들은 모르는 게 정상인데, 이 승객이 쓰는 단어라던지, 어젯밤에 대극장에서 열렸던 크루 빙고까지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게 아닌가.



이 승객은 총 5번의 항차를 혼자서 Back to back으로 크루즈를 타셨었는데 (이런 승객을 Consecutive cruiser라고 부른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승무원들과 잘 어울리고, 본인이 그동안 다녔던 많은 국가들, 타보았던 크루즈 쉽에 관해 말해주시며 승무원의 말동무가 되어 주셨다. 또한 다른 승객들하고도 곧 잘 어울리셔서 크루즈 내에 처음 탄 승객이 있다 하면, 마치 본인이 승무원인 것처럼 직접 데리고 돌아다니시며, 배의 시설물도 설명해드리고, 안내를 해드렸었다.


그래서 난 그분을 늘 Cruise Ambassador, Crew leader라고 불렀었다.


그럼 그분은  "오늘 오버타임 근무를 해서 크로노스(스케줄을 기록하는 승무원들이 쓰는 프로그램 이름)에 기록해야겠어." "오늘 월급날인데 왜 난 안 줘?" 라며 농담을 던지셨다.



한 달 가까이 크루즈 안에서 승객이 아닌, 마치 동료마냥 서로를 대하며 친해졌었다. 하선을 하고 나서도 몇 번 메일로 주고받아, 안부를 묻기도 했고,


3년 전 우연히 싱가포르에 크루즈 여행을 갔다가 배안에서 만나기도 했다!!!!!



크루즈 안에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비행기, 호텔에서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승객들이 많다. 그러나 크루즈는 특별하다. 짧게는 4박 5일, 길게는 한 달이 넘는 시간, 슈퍼마리오처럼 20년이란 시간을 한 곳에서 머물며 지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객이 가족 같기도 하며, 크루즈에 있는 동안은 그들이 정말 가족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수도 없이 많은 가족 같은 승객들과 승무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크루즈에서 일한 3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이자, 특별한 시간이다.



*뉴욕타임스  Mr. Salcedo에 관한 기사

https://www.nytimes.com/2017/02/24/business/retiring-on-a-cruise-ship.html?nytmobile=0&_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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