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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noir Dec 09. 2022

퇴사 면담 (1)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아침일찍부터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거 같았다. 퇴사를 하겠노라고, 내가 생각하는 더 가치있는일을 찾아 하겠다고 이미 정했다고 까지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정해진건 없지만 대부분 뒤에 계획이 없다면 놓아주지 않거나 퇴사상담이 길어진다. 아침에 상사가 출근한다. 오늘도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상사님이 예뻐하는 화분들에 물을 주고 책상을 닦고 커피,차를 채워놓고 앉아있었다. 매일 상사보다 30분은 일찍 출근하여 위에 말한 일들 보다 더한 잡일들을 해야했다. 말나온김에 다 적고 싶어졌다. 


보통 출근 시간은 9시이다. 내가 사는곳과는 1시간30분 거리였다. 내가 속한 부서가 나랑 상사만 있는 팀이지만 사무실이 분리되어 다른 동네에 떨어지게 되어서 그렇다. 일단 그렇게 출근시간이 걸리는데 사십분정도는 더 일찍와야 여유롭게 잡일들을 다하고 책상에 앉아 상사에게 인사를 건낼수 있었다. 먼저 출근하면 상사가 아끼는 화분들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잎에 있는 먼지를 닦고 상한 잎들을 떼어주고 분무를 해주며 일주일에 한번은 화장실로 모두 옮겨 넘치도록 물을 줘야한다. 그리고 나선 주변에 떨어진 물기를 정리한다. 말끔하게. 그리곤 상사가 자주 먹는 믹스커피를 채워놓고 종이컵도 채워놓는다. 그다음은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진않았는지 더러운곳이없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론 사무실 바닦을 쓸고 닦는다. 그렇게 하면 아침에 할 잡일이 끝난것이다. 이 귀찮고 짜증나는 일은 아무도 하고싶어하지 않지만 상사는 눈치로 너의 일이야 라고 말해왔고 제대로 몇개 못한 날에는 한숨을 동네 떠나갈듯 쉬며 이렇게 쉬운것도 못하는데 뭘 제대로 하겠어 라고 말한다. 초반에 한번 들은 후로는 누가봐도 말끔하게 했었다. 


어떤 바보가 이런 일을 계속해 비서도 아니고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이걸 매일매일 4년을 했다. 내겐 긴 시간이였다. 깊게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고 화가나고 내가 너무 한심해질거같아서 그냥 웃으면서 했다. 어쨋든 바로 관둘거 아니면 해내야하고, 이겨내야 했기 때문에. 


다시 퇴사면담날로 돌아와서

나는 아침에 커피를 타는 상사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할말이 있다며. 회의실에서 말씀드리고 싶다고 언제 시간이 되시냐며 물었다. 그녀는 눈치를 챘던거 같다. 오전 오후 둘다 미팅이 있어서 내일 시간될거같다며 미루었다. 내일이 되도 상사는 면담시간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드디어 면담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싶다고, 하고싶은 일을 하며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싶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들은 내가 하고싶은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는데는 몇년이 걸렸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이직을 하고싶으며 옮길 곳도 이미 정해졌다. 퇴사 일의 협의를 바란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화가난듯 울분을 터트릴것 처럼 보이는 얼굴에 나도 적지않게 당황했었다.

그녀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나는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몇년동안 내내 해왔었다. 언젠간 퇴사면담을 하는 자리에 앉아야 하기에 그때 내가 들어야하는 수치스러운 말들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해왔었다. 실전에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곧바로 화를 내며 이야기를 했다. 

너는 생각이 있는애니 없는애니 지금 이야기를 하면 통보지 이게 면담이고 협의야? 적어도 육개월 전에 이야기를 해야 내가 조정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지금 두달후에 나가고 싶어하는게 양심이있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였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나를 얼마나 우숩게 보았으면 이런말을 화를 내면서 까지 할까. 퇴사를 하겠다는 직원앞에서 굳이 이런 얼굴 이런 말을 해야했을까. 한심했다. 그리곤

나는 진짜 니가 아무리 어려서 한치 앞을 보지 못한다해도 이렇게 어리석을줄 몰랐다.얘. 우리회사가 성장하는거에 비하면 넌 어디가도 더 낮은곳으로 가는것뿐이 안돼.너의 발전과 가치있는 일은 그렇게 허접한 일을 하는거에서 비롯되는거니? 그리고 너는 니가 하는 전공 그대로 가면 안되고 이것저것 다 조금씩 하는일을 해야해 너 전문직처럼 한분야 파서 일하는거 아무나 못하는거야 너는 그런거 안맞아 안된다고, 여태껏 잘하지도 못한일들 그거 계속한다고 욕심낸다고 되겠니? 지금처럼 여러가지일 얕게 하는게 너한테는 딱이야. 너 퇴사하는거 엄마 부모님 한테도 의논은 해봤어? 내가 니 엄마라면 딸이 이런 바보같은 선택을 하는데 절대 이렇게 하라고 못하지.

나에게 어떤 기회도 쥐어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았으면서. 나를 다 안다는듯이 이야기를 한다.참다가 마지막말에 정말 도 닦은 몇년간의 시간이 무너질것 같았다. 너무 화가나서 테이블을 뒤집고 이 미친년이 지금 엄마 얘기가 왜 나와, 니가 왜 우리 엄마야 만약 같은소리 집어치워.니가 나를 왜 평가해.퇴사하면 지나가는 아줌마 되는 주제에 어디서. 까지 하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참았다. 같은사람이 되지 않은것. 그걸로 만족스럽다.지금도 생각한다 그런 나쁜말 한게 돌아돌아 본인에게,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누구에게 도착하기를. 그리고 후회하기를. 


어쨋든 이런저런 모욕을 듣고도 나는 같은 말을 했다. 퇴사일 협의 부탁드립니다. 라며 완강하게 계속 같은말을 하는 나를 보고 어느정도 화가 가라앉았는지 일주일 다시생각해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일차 퇴사 면담은 끝이났다. 집에 돌아가서 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했다. 마음 한구석이 멍이 잔뜩 들어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을 꿨다. 또 면담을 시작했다. 꿈에서 깨보니 나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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