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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은 20대 연애보다 더 바보 같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데 더 소심해진다.

by 나저씨
바보들의 사랑행진(나저씨 그림)

영화 ‘건축학 개론’은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대학생의 풋풋한 사랑을 보여주며

국내에서 인기몰이한 영화다.


건축학 개론에 나온 주인공들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다.

이젠 나이를 먹어 그때의 감성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며칠전 여사친을

만나고 연애 감정과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오랜만에 친구 C를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C는 내가 최근에 알게 된 친구인데,

요즘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좋기만 할 것 같은 친구 C에게도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상대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 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C의 문제는 상대와의 거리를 진짜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너무 잘 알아서'

일어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상대와의 관계 시뮬레이션을 다각도로

하다 보니, 오히려 내부에서 과부하가

걸려버린 것이다.


20대엔 나와 상대를 잘 몰라서 다가가지

못했다면, 40대에는 너무 잘 알아서 서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40대가 되면

20대 때보다 더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연애로 인한 회복탄력성이 거의 제로인

상태가 되어버려서, 서로 호감이 있음에도

가까이 가는 걸 꺼린다. 아니 무서워한다.


친구 C를 보고 있자면, 답답한 생각이

들지만, C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C와 똑같으니깐 말이다. 이혼하고 나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느끼지만

가까이 가질 못한다. 이 만남(연애)이 실패하면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겁을 낸다.


그렇다. 40대는 연애 헛똑똑이가 되어 버린다.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 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친구 C와는 한 시간 넘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답을 내지는 못했다. 애초에

이건 답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답은 이미 나왔는데, 답을 선택할 사람들이

겁을 내며 선택을 회피하는 것이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게임을

계속 진행할지 포기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난 카페에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며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 C에게 해 줄 말을 생각해 본다.


"그냥 저질러 보라고. 해보고 안되면

그걸로 끝내고 보내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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