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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기란...

초심을 잃은 게 아니라, 없었던 거였다

by 나저씨
tempImageH4JoZR.heic 초심(나저씨 촬영)

서울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20대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 주머니 사정은 말할 것도 없이 바닥이었다. 부모님께 100만 원을 지원받아 회사 근처 고시원을 구했다. 처음 고시원을 구할 때만 해도 한 달만 버티다가 제대로 된 집을 구하자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곳에서 1년을 살았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와 TV가 전부였던 그 공간. 너무 좁아서 아침에 눈을 뜨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 조그만 방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새벽에 취객들이 싸우는 소리, 기분 좋은 사람이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 경찰차 사이렌 때문에 잠에서 깨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서울에서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의 삶과 20년 전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삶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작 삶에 만족하고 행복했던 때는 부족한 게 많았던 고시원에서 지낸 20대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고시원에서 살던 20년 전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20대의 나는 현실에서 행복을 찾았다.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다녔고, 매일 새로운 곳을 다니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40대인 지금의 나는 새로운 경험을 귀찮아한다. 아니, 귀찮아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거나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가봤자 얻을 것도 없어"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집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혼을 준비하면서 시작했던 새로운 도전들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려는 지금 순간에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언제나 하나를 이루면 그다음을 모색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아니라, "충분히 했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타협적인 본능이 나를 유혹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지금은 책 출간과 개인전을 마친 후 살아갈 내 삶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게 걱정된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대로 내 인생이 멈춰버릴까 봐 두렵다. 이런 걱정 때문인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몸마저 무력해져 가는 게 느껴진다. 내 삶에 새로운 자극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예전에 살았던 고시원을 찾아갔다. 내 서울 생활의 첫 1년을 함께 했던 종로 3가에 있는 그 고시원 말이다. 다른 가게들은 모두 바뀌고 변했지만, 내가 머물렀던 고시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서서 멍한 표정으로 고시원 간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새로운 자극이 오기를, 무언가 깨달음이 오기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초심을 찾으러 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렇게 실망하고 며칠이 지난 후,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는 애초에 '초심'이라는 게 없었다는 사실을.


서울에 올라올 때 거창한 목표를 세우거나 큰 열망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주어진 하루를 살아갔고, 그 하루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렸을 뿐이었다. 초심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실패자이거나 게을러서 초심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여전히 우울감은 걷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미래에는 지금의 내 모습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억지로 우울을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미래를 통제할 수 없었던 고시원 시절처럼, 지금도 하루에 집중하면 된다. 초심은 애초에 없었다. 내게 주어진 건 언제나 오늘 하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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