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우리

아름다운 영화 속에서 찌질했던 내 과거를 마주했다

by 나저씨

지난주에 영화 <만약에 우리>를 시청했다. 서로 사랑했지만 헤어진 연인이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참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애절한 사랑을 감성적으로 잘 풀어냈고, 연인으로 분한 배우들의 감정 연기도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보진 못했다. 사실 보는 내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갔던 많은 연인들이 떠올랐고, 그때 바보처럼 행동했던 내 흑역사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보는 내내 잊고 지내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밀려와 차라리 중간에 밖으로 나가고 싶을 만큼 고역이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영화에서 처럼 우연히 헤어진 인연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내가 누군가를 다시 마주친다면, 과연 누굴 만나고 싶을까? 솔직히 단 한 사람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의 모든 인연이 영화처럼 애절하고 아름답게만 끝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혼한 아내와 마주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난 아마 그 자리를 피해 도망칠 것 같다. 전처의 얼굴을 다시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 걸 보면, 내 안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는 않은 모양이다.


영화를 본 뒤 며칠 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지난날의 흑역사들이 떠올라 부끄러움에 이불킥을 해댔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바꿔 보면, 그때의 내가 그토록 서툴렀던 건 그 나이에 걸맞은 미숙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기억들이 쌓여 있기에,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깊고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여운이 가라앉은 뒤,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과거의 인연을 두고 “만약에 그때 그랬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인연에게 그 ‘만약에’의 순간에 하지 못했던 더 나은 선택을 하자고 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만큼은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만약에 우리”라고 후회하기보다, 현재를 마주하며 “그럼 이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가자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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