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앞에서 되찾은 독립
중년의 남성이 생존을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다양한 기술들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바로 “요리”다. 뜬금없이 요리가 왜 생존에 중요한 기술이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요리라는 기술은 그 어떤 기술보다 현실적이고 절실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 나는 왜 요리를 가장 중요한 기술로 선택했을까? 그건 내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다. 작년 연초에 처음으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먹을 것이 없었고, 밥값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평생 요리와 담을 쌓고 살았지만, 점점 밖에서 먹는 음식이 질리기 시작했고, 식당 메뉴가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혼자 사 먹기엔 양과 가격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식당이나 배달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때우던 어느 날,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기는 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면서 왠지 모를 서글픔과 묘한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파서 먹고 싶은 요리가 따로 있는데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펐고, 나이가 들어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배달 음식조차 사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니 두려워졌다.
그때 깨달았다. 싱글 중년인 나에게 요리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라는 것을. 그래서 감기가 낫자마자 곧바로 요리 학원에 등록해 약 두 달간 요리의 기초를 배웠다. 처음엔 칼질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재료 손질과 정리에도 서툴러 학원에서 항상 가장 늦게 끝났다. 몇 번은 포기할까 생각할 만큼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결국 끝까지 학원을 다녔고,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기본적인 재료 손질과 칼질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친 후부터 나는 쉴 새 없이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수육, 어묵볶음, 찐계란, 제육볶음, 오징어뭇국, 메추리알장조림, 갈비탕, 된장국, 김칫국, 닭 한 마리, 파스타, 두부조림, 미역국, 카레, 차지키 소스, 잠봉뵈르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요리를 만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한 번에 하나의 요리를 겨우 완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세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레시피 없이는 만들지 못하던 음식들도 어느 순간 감각에 의지해 조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요리를 시작하면서 배달 음식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고, 그 덕분에 식비도 많이 절약되었다. 하지만 요리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성취감”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고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만족감과 충만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퇴직을 하더라도 크게 두렵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냉장고에 식재료 두어 가지만 있어도 한 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퇴직한 선배들 중에는 스스로를 ‘삼식이’라고 소개하는 분들이 많다. 삼시 세끼를 남이 차려주는 밥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별명은 듣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남이 차려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차려 상대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나만의 생존 전략이다. 앞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더라도 대접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대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늙어서도 소박맞지 않고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연배이거나 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주저하지 말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라고. 요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중년 이후의 삶을 독립적으로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무기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는 대신, 내 손으로 도마 앞에 서서 칼을 쥐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칼을 들고 마늘과 양파를 함께 썰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