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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an 29. 2024

130

1.29

극적인 고백


노동의 긴장을 잃지 말 것. 일단 담배를 피워 둘 것. 혀를 무겁게 하고 발목을 가볍게 할 것. 용기 같은 거 내지 말 것. 하루의 한 끼는 무언가를 씹을 것. 주일에 한 번은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것. 가능한 만큼 얼굴을 씻을 것. 구석구석 위생적일 것. 바퀴벌레를 밟아 뭉갤 정도의 담력을 가질 것. 생에 하나쯤 집착의 대상을 둘 것. 하루의 두 시간 정도 무언가에 몰입할 것. 나머지는 되는대로 살 것. 책 같은 거 완독 하려고 하지 말 것. 저 좁은 골목의 슬픔을 기꺼이 방 한쪽에 들여놓을 것. 현관문을 나서며 죽음을 응시할 것. 세상 누구도 자신을 구원하리라 믿지 말 것. 어떻게든 수면 위로 올라와 손을 뻗을 것. 그 손목이 잘려도 좋다고 단념할 것. 모욕과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 것. 박탈과 상실을 감당할 것. 의미나 쓸모 같은 건 찾지 말 것. 무의미와 허무와 함께할 것. 비상하려다 추락하는 인연에는 맨손만 가지고 돌아설 것. 진심으로 누구도 사랑하지 말 것.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일부 미움을 둘 것. 절대로 가치관과 충돌하지 말 것. 받아들일 수 없다면 떠날 것.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 것. 성실하거나 실성할 것. 바람과 노닐 것. 가슴의 운명은 빛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나이 따위 신경 쓰지 않을 것. 다만 적의를 다스릴 정도의 인격을 갖출 것. 혐오는 오직 자신에게로만 향할 것. 열흘에 한 번은 사람을 만날 것. 한 달에 한 번은 취할 것. 기억을 소멸시킬 것. 주기적으로 세상과 작별할 것. 간간이 게으른 영혼이 온몸을 뒤덮어버리게 둘 것. 계획 같은 거 하지 말 것. 택시를 타고 창문을 열 것. 버스 맨 뒷자리에 건달처럼 앉을 것. 날마다 건조하더라도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단물 빠진 껌처럼 씹어댈 것. 서성이는 고독을 환영할 것. 들끓는 상념에는 찬물 샤워를 불면에는 몸을 불릴 것. 다시 떠오르는 해를 시기하지 말 것. 마침내 오감과 믿음만 가지고 각자의 현장 앞에서 경건할 것. 잠들어 누워 있을 때 나를 지키는 건 오직 어둠이라는 진실을 기억할 것. 어둠만이, 어둠만이, 끝내 눈이 멀지 않게 함을. 유일한 진리임을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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