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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Jan 25. 2024

129

1.25

메모 


절망을 통과한 자들은 대범해진다. 외따로 가는 법이다. 더는 무너질 것이 없다는 태도는 궁극의 평온이다.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일은 아름답다. 근육이 되는 고통이 필요하다. 일정한 고통의 형식이 있을수록 진전이 있다. 생살이 패이는 일보다 마음이 살찌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누구도 서로에게 구원이 되지 못한다. 가끔은 생살이 패이는 일도 재미있다. 그 순간 찬바람이 분다면 최고다. 반쯤 정신을 잃는 일은 흥미롭다. 그것은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차라리 나은 시간이다. 고독은 범람할수록 좋다. 고독을 쏟아내는 자들은 고독과 화해할 수 없음을 아는 인간이다. 밤새 상실의 몸을 만져도 따뜻해지지 않음은 흔한 일이다. 새벽에 홀로 하는 절규는 창조의 양분이거나 단순성의 기반이다. 시시각각 틈입하는 허무나 무의미는 자유의 발원이다. 그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 건조한 채로 사는 일상은 특별한 고통이 아니다. 방바닥에 엎드려 먼지를 닦는 일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우수를 반복하다가 문득 몰락하는 인간은 초월하는 인간이다. 정신적 구토는 인간을 해방시킨다. 가난하게 사는 인간이 별을 자주 본다. 경멸하는 자들은 생존에 능하다. 허무가 죽음을 넘어갈 때 내면의 막 하나가 찢긴다. 내면의 막을 스스로 찢은 자에게는 자연이 들어온다. 몸속에 자연이 있는 자들은 자멸하고 돋아난다. 그들은 파괴되지 않는다. 돌연히 웃는 자들은 위로가 필요하다. 생각 속에 길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웃기 마련이다. 회복은 자각될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찰나이다. 불완전함이 유일한 실체다. 진실을 알아보지 못함이 유일한 진실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인간이 자신을 사랑한다. 누구도 삶 한가운데 의미라는 단어를 붙들어 놓을 수는 없다. 악은 평범하고 선은 특별하다. 인간의 집단적 유희 속에는 늘 야만성이 잠적해 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에게는 삶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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