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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공방 Sep 30. 2021

고양이랑 스페인에서 호텔 가기

그런데 바르셀로나와 국제이사를 곁들인..

  랜딩하고도 한참을 기다려 우리집 고양이를 찾을 수 있었다. 특수 화물칸 앞에서 모란이를 기다릴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작은 공항은 한적해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서류 한뭉텅이를 손에 쥔 채로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에 계류될 경우 일이 복잡해 지기 때문에 접종, 광견병 항체 검사, 동물등록증 등을(공항에 다 와서 확인한 들 의미 없지만) 다시 한 번 훑어봤다. 한국에서 부터 여러 번 확인한 후 였다.


  특수 수화물이 나오는 칸 앞에(공항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몰라서 설명만 하자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특수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 앞 커다란 철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공항 카트에 녹색과 흰색이 섞인 켄넬을 싣고 나오는 직원이 보였다.


  정말이지 영화에서 처럼 후광이 비추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고양이를 건네주고 갔다. 아무런 서류 확인 없이.

  심지어 이게 내 고양이가 맞나 확인조차 안하고 주려고 해서 내가 오히려 문제가 생길까 지레 겁먹고 여권사이에 끼워두었던 확인증을 보여주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시험준비 엄청 해갔는데 선생님이 시험을 안봐서 좋기도 하지만 묘하게 김빠진 학생처럼 공항을 나섰다. 택시기사님을 포함한 주변 모든 이들이 모란이를 예뻐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말이다.






  호텔의 입구는 누가 잘 찾나 시험이라도 하는 것 처럼 숨겨져 있었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가르고 주황색 가로등이 서 있는 모습은 내가 유일하게 경험한 서양 국가인 호주의 여느 골목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조용하고 이색적이었지만 외국인 혼자 걷기에 안전해 보이지도 않았다.(외국이 대체적으로 그런 편이긴 하지만) 그런 골목을 구비구비 지나 겨우 도착한 호텔은 유럽의 감성 그대로 간판이 코딱지 만하게 붙어있어 찾기 힘들었고 그나마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친절한 직원의 조식안내와 동물 동반 시 적용되는 추가요금안내를 길고 자세히 듣고 요금지불 후에 올라올 수 있었다.


  방에 올라온 첫 인상은 좁았다.


캐리어를 펼치면 지나갈 길이 겨우 생겼다.


  내 짐은 최대한 줄인다고 줄여서 큰 가방과 작은 가방, 그리고 24인치 캐리어가 다 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침대 빼고는 거의 자리가 없던 바닥이 꽉 찼다. 그 옆으로 캔넬까지 놓고나니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아졌다. 모란이가 들어있는 캔넬은 아시아나 로고가 가득 박힌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져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필기구를 챙겨서 칼로 그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를 끊고 모란이를 꺼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니었으면 호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로 테이프를 뜯어서 꺼내야 했을 것이다.


  모란이는 잔뜩 움츠린 귀와 잔뜩 내려간 꼬리로 주변을 돌아다녔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주는 대로 습식사료도 잘 먹었다는 것이었다. 방엔 엄청나게 큰 강아지용 밥그릇이 있었는데 과장 조금 보태서 모란이가 들어가서 자도 될 것 같았다.

놀랐지만 밥은 잘 먹어 다행이다.


  생에 첫 이사가 국제이사가 되어버린 고양이는 그렇게 화장실에 콕 박혀버렸다. 어찌보면 다행인게 짐에 가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방보다 화장실이 더 쾌적해 보였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요기할 거리라도 사와야 겠다는 생각에 물과 화장실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9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서 어두운 길을 잃지 않게 긴장하며, 오는 길에 스쳐지나가며 봤던 동네 마트에서 커다란 오렌지 주스와 계피가 뿌려진 쌀푸딩을 급히 사서 들고 왔다. 열쇠를 빠르게 돌려 방문을 열자마자(호텔인데 카드키가 아니었다.) 어디 갔다가 오냐는 모란이의 엄청난 원망을 들어야 했다. '미안, 미안.'을 연달아 말하며 등이며 엉덩이를 다독거렸지만 딱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진 않았다.


 마트에 구비된 플라스틱 숟가락이 없어서 뚜껑을 접어 열심히 쌀푸딩을 퍼먹었는데 내가 두개째 뚜껑을 열어 접고있을 때 쯤 모란이가 나왔다. 그리고는 여기가 대체 어딘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킁킁거리며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다가도 침대가 나의 자리라는 마냥 자리를 잡았다.

쌀푸딩과 이미 거의 마셔버린 오렌지 주스


  나는 변기 옆에 설치되어있는 유럽식 비데도 사용해 보고 (시트 없는 변기처럼 생겼는데 더운 물과 찬 물의 손잡이를 따로 돌려 온도를 맞춰야 하는 수도꼭지가 바로 위에 있다.) 샤워커튼이 달린 욕조에서 샤워도 마쳤다. 사실 일련이 과정들이 하나같이 진땀 나서 온몸이 피로와 땀에 절여진 기분이었다.


  그걸 씻어내고 나니 좀 살만해졌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더욱 살만해 졌다. 한국에서 택시에 속옷가방과 침낭을 놓고 온 바람에 남아 있는 속옷이 몇 벌 없었다. 그걸  어떻게 분배해서 세탁 할 일 없이 바르셀로나 까지 도착할까 고민하며 발치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워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화나서 멱살 잡은 거 아니고 옆에 꼭 달라 붙어서 가지 말라고 잡는 중 



  그렇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밤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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