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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공방 Oct 05. 2021

고양이랑 스페인기차타기

렌페(Renfe)는 거들뿐!

  

기절하듯 잠들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새벽같이 눈은 떠졌다.


창문 밖 스페인의 아침


  방충망이 따로 없는 유럽의 창문을 열고 보니 색색으로 칠해진 건물 위로 오렌지 색 아침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내가 동영상 촬영 및 사진을 열심히 찍는 동안에도 우리집 고양이는 침대에 푹 파묻혀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침대에 파묻혀서 움직이지 않다니. 역시 고양이는 현명하다.


나보다 훨씬 적응을 잘하는 모란이


  나는 오늘 스페인의 주요 이동수단 중 하나인 렌페(Renfe)를 타고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갈 예정이었다. 이것도 전주에서 공항으로 갔던 리무진 버스에서 처럼 (혹시나 다른 승객이 눈치를 줄까봐 미리 걱정돼서) 아예 두 자리를 예약할까 고민했지만 준비를 도와준 유학원의 권유로 그냥 한 자리만 예약하기로 했다. 티켓도 프린트 해 뽑아놨고 문제가 생길 요소는 없었지만 여전히 실수하면 안된다는 긴장이 가득했다. 내가 쉴수 있는 시간은 아침과 호텔 조식을 먹는 시간 밖에 없을 게 뻔했으므로 애써 긴장을 늦추려고 노력했다.


미리 예약해 놓은 표


  모란이의 밥을 챙겨주고 조식 뷔페를 먹으러 내려갔다. 너무 일찍 깨서 할 일이 없었으므로 짐 정리 및 화장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호텔 조식은 정갈했고 굉장히 기름지고 짰음에도 맛있어서 모든 스페인 음식이 이렇다면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게 했다. 특히 감자를 넣고 찐 오믈렛 같은 게 맘에 들었는데 기본적으로 감자도, 계란도 부드러운 식감도 좋아하는 나에게 딱이었다. 나중이 되어서야 그 음식이 또르띠아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마트에서 파는 조금 딱딱한 식감의 또르띠아를 사먹을 때 마다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날 아침 먹은 음식이 스페인에 체류하는 동안 제일 맛있게 먹은 식사와 커피가 되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2잔이나 마셨다.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맛있게 먹었던 스페인 음식






  이동장에 들어가는 고양이는 불만이 많아 보였다. '또 뭔데. 끝난 거 아니었어?'하는 표정이 선했다. 


  '아웅, 아웅'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


  불만스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고 나는 또 커다란 가방, 작은가방, 캐리어, 캔넬을 끌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집 주인에게 또 다시 도착시간을 담은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나의 촉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채고 무언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번호 앞에 00을 집어넣어야 해요. 전화를 한 번 해 볼까요?"

  "부탁드릴게요."


  친절한 직원은 집주인과 연락 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만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신경이 더 곤두섰다. 책임질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혼자 움직일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신경쓸 게 많았다. 그리고 난 아직 그것을 모두 여유롭게 처리할 만큼 그릇이 크지 못했다. 제법 의젓하게 캔넬안에 있으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탑색하는 고양이의 무게가 새삼스레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택시를 불러줄까요?"

  "네. 렌페를 타러 갈 건데 목적지도 말해주면 고맙겠어요. 아, 그리고 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고 해 주세요."


  나는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고양이가 있으면 승차거부를 당할 수도 있단 생각에 급하게 덧붙였다.


  "문제 없어요."


  나는 의레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동물을 정말 좋아했다. 개를 너무 많이 키워서 전신주 밑쪽은 오줌으로 인해 변색되어 있고 개의 똥과 오줌 냄새를 맡는 일도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없다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호의적이라 가능 한 일 같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님도 그래보였다.


첫날 호텔에 올 때 우리를 데려다 준 기사님도 돌고래 소리를 내며 모란이를 예뻐했다. 스페인어로 굉장히 빠르게 말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예뻐하는 게 분명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넣어 꼬물거렸을 땐 '고양이가 무서워하니 그러지 말라고 스페인어로 어떻게 얘기하지?'라고 고민할 정도였다. 마치 얼굴만 다르고 같은 기사님이 온 것 처럼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도착한 렌페 승강장은 넓고 복잡한 플랫폼의 연속으로 보였다. 대부분이 백인인 그 곳에서 커다란 짐을 들고 고양이 캔넬까지 옮기는 나는 이질적인 존재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도 인종차별적인 문제에 휩쓸릴까 걱정되지 않았던 것은 대부분의 관심이 고양이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wikipedia

  "안녕, Kitty Cat!(애기 고양이!)"


  플랫폼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캔넬안에 들어있는 고양이를 보고 예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행자 들인지 영어로 앓는 소리가 났다. 나는 딱히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웃고 있었다. 개와 다르게 집에서만 생활하는 고양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귀여움 받을 일은 흔치 않다. 


  '여러분! 내 새끼 귀엽습니다!'


내면의 내가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평소에 억눌러 놨던 팔불출 본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런 내적 상황과는 달리 나의 다리는 열심히 플랫폼을 찾아서 줄을 섰다. 캐리어 위에 고양이 캔넬을 올리고 낑낑거리면서 땀이나기 시작했다. 짐을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으나 역시 먼 길을 갈 땐 뭐든 버거웠다. 그 와중에 스트레스 받을 고양이를 생각하니 근육이 긴장해 배로 힘이 들었다.


안내방송도 당연히 스페인어였다. 발렌시아를 지나칠까봐 걱정되서 잠도 못잤다.


  렌페엔 기차에서 종종 보이듯이 출입구 근처에 짐을 놓을 수 있는 칸이 있는데 나는 거기 중간칸에 제일 먼저 고양이를 올려놨다. 그리고 최대한 시각적인 자극이 덜 할 수 있도록 자켓을 벗어 꼼꼼하게 가렸다. 중간중간 살짝 걷어서 모란이에게 괜찮다고 말 해 줄 때 마다 흔히 말하는 엄마미소를 짓고 쳐다보는 스페인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쯤되니 살짝 어리둥절 할 정도였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친화력이었다.



나는 그렇게 잔뜩 긴장한 채로 한순간도 잠들지 않고 발렌시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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