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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공방 Sep 17. 2021

[아, 심심해] 벽꾸미기

추억이 있는 엽서들




이사를 온 지 2달이 지났다.


가장 중앙에 드림캐쳐부터 달아봤다.

  5평짜리 풀옵션 원룸에서 12평 정도의 오래된 빌라로 이사오면서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살림살이를 다 사야하는 상황이었다. 내 취향과 상관없는 곳에서 워낙 좁게만 살다가 이사오는 것이었어서 내 취향으로 가득 찬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 엄청난 검색을 했었더란다.

  침대, 책상, 의자,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 공간박스 등 방을 채운 모든 것은 나의 손을 타 조립되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화이트 앤 우드]. 요샌 미드센츄리가 유행하는데 굳이 오래 전에 유행 끝난 화이트앤 우드를 선택한 것은 결국 나에게 맞는 게 이거라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느라 한 번도 [화이트 앤 우드]로 깔끔하게 꾸며놓고 살아본 적도 없었던 것도 한몫 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색감과 물건을 관리하고 배치하는 것을 피곤하게 느끼고(보는 건 좋아한다.) 미니멀을 지향하는(모두의 최소는 다르기 때문에 물건이 아주 없진 않다.) 사람으로서 비어있는 공간이 많을 수록 나는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자주 변덕스레 바뀌는 색에 대한 취향 때문에 매번 쉽게 바꿀 수 없는 알록달록한 가구를 들여놓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그래서 기껏 마련한 나의 집엔 휑한 공간이 많았다. 또 역시나 변덕스럽게도 그 휑한 공간이 조금 지겨워져서 이사갈 때마다 붙여놓고는 했던 드림캐쳐와 엽서를 꺼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 다음부터는 유독 고양이 관련 소품이 눈에 들어오고는 했는데 그것은 대만 가오슝에 갔을 때도 그랬다. 대만 남단의 예술가 마을. 이것저것 신기한 건 많았지만 역시 내가집어든 것은 귀여운 고양이 엽서였다.


  노란색이 따뜻했고,

  우유를 따르는 고양이는 귀여웠다.(고양이는 실제로는 우유를 마실 수 없을지라도)



 

제주도 해녀 작가님의 드림캐쳐



  내가 가진 물건 중에는 여행을 갔을 때 사왔던 것들이 많은데 일단 여행이라는 상황에 맞게 크기 않은 부피와 그 안에 담겨있는 추억이 날 늘 기분좋게 한다는 이유로 정리할 때 마다 살아남은 것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샀던 작은 드림캐쳐 또한 그러한 이유로 나와 전주, 스페인, 서울, 부천 등 많은 곳을 이사다니고 있는데 작은 소품샵에서 본 순간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봤었다. 제주도 해녀 작가님께서 물질 할 때마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조개껍질, 유리조각 등으로 만든 것이라는 스토리텔링까지. 완벽했다.

  나는 당시에 스페인에 가기 위해 소비 자체를 안하고 있었지만 이건 스페인까지 들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이사 와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달력 위에 대충 걸려있던 걸 다시 붙일 생각으로  신중히 잡은 위치에 꼭꼬핀을 꽂았다. 침대 위 좌우 대칭이 맞는지 확인하며 드림캐쳐를 걸었다. 하얀 벽이 너무 커서 그런지 드림캐쳐가 유난히 더 작아보였다.


나는 엽서를 붙일 때 늘 자국이 남지 않게 블루택을 사용한다.


  그 주변으로 엽서를 어울리게 붙여보았다. 대만 고양이 엽서 세 장으로는 모자라서 미술관에 갔을 때 가져왔던 엽서도 한 장 달았다. 균형이 맞아 기분이 좋아졌다.

 


 외출을 자제하는 생활이 길어지고 다 늙은 사람마냥 추억을 곱씹으며 그리워한지도 꽤 됐다. 그래도 새로운 공간에서 옛 추억을 기억하며 작은 추억들이나마 쌓아 간다면, 이 엽서들 처럼 아련한 기쁨을 주는 시간들이 또 올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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