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공방 Mar 18. 2024

나라고 괜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나도 무섭다

  나는 얼마전에 일을 그만뒀다.


  그래도 10년이나 계속한 학원 강사일이었는데 나는 이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보고 싶고 같이 일하던 선생님들이 생각나는 걸 빼곤 아직 미련이 없다.

  오늘은 청소를 하며 오직 출근만을 위해 샀던 밋밋한 반팔 블라우스를 헌옷수거함에 버렸는데 이제 다시는 출근만을 위한 옷은 입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개성을 나타내는 옷을 입으리라. 다짐의 다짐을 하며 짜릿한 마음으로 팍팍 옷을 던져 넣었다.(덩크슛 하듯 던져넣고 싶었으나 이미 옷이 많이 차 있어서 잘 안들어갔다.) 

 사실 옷을 던져 넣던 기세와는 다르게 '만약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되서 굶어죽게 생기면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처음 강사일을 시작할 때는 대략 5년, 길어야 7년 정도면 내 길을 찾고 멋있게 그만두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매정하게도 10년이란 세월을 가져가고도 아직도 결론 하나 남겨준 것도 없다.


  그동안 주변에서 주워듣는 나에대한 이미지로는 


자유롭다.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술을 잘 마실 것 같다. 

친구 되게 많을 것 같고 모임도 주도할 것 같다. 라는 것들이 있는데 어느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흥미롭다.


나는 일단 술을 못하고 일이 없는 한 집 밖에 나가는 건 몹시 드믄 일이다. 하지만 간간히 전해듣는 나의 소식에 해외에 나갔다거나 콘서트를 갔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 얘는 해외를 밥먹듯이 나가는구나'

'엄청 외향인이구나'


  하고 이해된 모양이다. 대체 왜 그럴까 나는 예전부터 조용히 살아왔는데 왜 엄청난 외향인의 이미지가 자리잡은 걸까 생각해보니, 나는 생긴게 '쎄게' 생기고 종종 해외에 나가는데 나의 눈물 콧물 다 쥐어짠 자아찾기가 눈물 콧물을 안보여줬더니(더러울 게 뻔해서) 즐거워만 보였던 게 틀림없다.


뭐, 돌고 돌아 결론은 나도 무서워하며 떠나고 무서워 하며 그만둔다.

굳이 비유하자면 생긴 건 셰퍼트에 말티즈의 영혼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러다 문득,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멀게만 생각했던 자기계발 방면 유투버들도 비슷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분명 처음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와 다르게 얼굴까지 공개하고 활동을 이어가는 걸 보면 분명 더 외향적이고 대단한 분들이 분명하겠으나, 그들이라고 해 고충이 없겠는가.


  그래서 난 지금 아무 것도 없을 때 덜그럭 거리며 굴러가는 나의 일상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어딘가에서 혼자 현실과 외로움에 고군분투하고 있을 어른이들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1초만의 사고, 그래도 출근(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