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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Jan 08. 2020

법에 대한 의구심

2018. 10. 일기

내가 법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것은 신봉원을 접견한 뒤였다. 전과기록을 보면 절도 10개월, 야간주거침입절도10개월, 특수절도 6개월 … 상습절도 1년, 3년. 올해 그의 나이는 스물 여덟. 그가 이십대에 구치소 안에서 보냈던 시간과 밖에서 보냈던 시간은 엇비슷할 것이다. 그는 강원도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 자랐고, 이미 중학생때부터 소년원을 드나들었다. 사나운 성품도 아니었고,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훔치는 것만은 계속했다.


 훔치는 실력은 형편없었고 잡히기 위해 훔치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 훔친 식당에 다시 가서 훔치기도 했다. 한번 도둑이 든 가게는 방법카메라든 뭐든 달기 마련이다. 한번 도둑이 들면 다시 안들거라고 생각했을까. 신봉원은 아마 그런 심리전을 해보려고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일 전 새벽 그 가게 문이 잠겨있지 않았으니, 오늘도 다시 열리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이번에 그가 훔친 재산은 삼십칠만천원. 체포될 때 사만천삼백원을 들고 있었는데 이것은 압수되었고 피해자에게 환부되었다. 한 사람에게는 사만원, 다른 사람에게는 천 삼백원.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모르겠다. 피해액 비율대로 반환해 준 것은 아니었다. 천삼백원 받은 사람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여겼을까.


이미 1심에서 1년 6개월 형이 선고되었다. 판사는 판결문에 권고형이 1년 6개월에서 5년 6개월이라고 써놓았다. 계산은 틀림없었다. 특가법 제5조의 4 제1항이 위헌 결정이 된 이후라 그나마 가볍게 처벌되는 것이었다. 삼십칠만천원에 일년 육개월이라. 이것만 떼어놓고 보면 과한것이겠지만 어차피 이번 처벌은 그의 전과에 대한 처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처벌하지 않으면 다시 범행을 하는 것을 막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구치소 접견실 문을 힘없이 당기고 들어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했다. 내가 항소심 국선변호인이라고 소개를 했을 때 고개를 가만히 주억거렸다. 말이 없는 편이 좋다. 어차피 할말도 많지 않고 말해 봤자 도움될 말도 없다. 심심한 수감자가 변호사와 대화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 피곤하다. 필요한 말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는 필요한 말도 별로 없었다. 합의를 도와줄 사람도, 합의금도 없을 것이다. 강원도에 할머니와 삼촌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이곳까지 와서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며 합의서를 받아올리는 없다. 그들도 하루벌어 하루살고 있을게 분명했다. 예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신봉원이 크면 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랬더라도 그 생각은 일찍 접었을 것이다. 절도는 보통 집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할머니와 삼촌이 그날 벌어온 돈 중 천원짜리 몇장이 비는 것을 눈치챘지만 물증은 없어서 분해하였을 그 시점부터, 가족들은 그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성문을 썼냐고 묻자 그것도 별다른 대답이 없다. 반성은 양형의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을 해준다. 그도 알 것이다. 내가 변호사일 시작하기 전부터 재판을 몇 번 받았으니까. 그리고 1심 판결문에도 이미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했다고 써있다. 반성을 더 한다고 형을 더 감해주기는 어렵다. 반성은 그 유무를 판단하기는 쉽지만 그 양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도 알 것이다. 반성문을 수백장 더 쓴다고 해서 반성의 양이 늘어나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더욱 할 것은 없다.


나는 그에게 아직 서른살밖에 안되었으니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반성문에 적으라고 했다. 좋은 계획이라면 판사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젊은 수감자들에게 내가 종종 하는 조언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 그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나를 잠시 쳐다보았고 나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십대 절반 이상 감옥에 있었고, 남아있는 그의 인생을 고려해보면 지금까지 감옥에 있었던 시간보다 더 오래 감옥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그도 알 것이다. 내가 안다는 것을 그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조언을 하는 것이 자신을 비웃는 것은 아닌지 그는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혹은 내가 얼마나 순진한 얘기를 하는지 내 눈을 보고 확인해보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나는 재판 날짜가 잡히려면 아직 날짜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는 알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나도 알고 내가 안다는 것을 그도 알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좀 전 대화한 것을 가지고 짤막한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적으면 이렇다. 피고인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범행사실 일체를 자백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절취한 금액은 그 합계가 371,300원{(201x. x. x. 02:07경 절취금 160,000) + (201x. x. x. 02:00경 절취금 1,300원 + 금고 시가 90,000원) +  03:30경 절취금201x. x. x. 130,000)}에 불과하고, 이 중 41,300원은 피해자에게 반환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출소 직후 부산에서 설비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부산, 김해에서 전기계통 업무를 시작하는 등 성실히 살아기가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201x. 초여름경부터 잦은 우천으로 인하여 제대로 일할 수가 없어서 수입이 끊겼고, 그 무렵부터 30만 원 남짓한 월세는 커녕 식비도 부족한 형편에 놓이게 되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비록 피고인에게 다수의 전과가 있으나 마지막에 출소한 다음에는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한 점을 보면 아직 개전의 정이 남아있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은 이번 수감을 계기로 향후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연민이었을까. 내가 피해자 중 순대집 주인에게 전화를 해봤다. 점잖은 사람이었다. 합의를 해 줄 수 있냐고 묻자 돈을 가져오면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합의금을 마련할 형편이 안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을 그냥 풀어주면 또 다시 범행을 하고 자기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맞는 말이라고 했다.  마음이 바뀌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할 리는 없었다.


상습으로 하는 도둑질도 서툴러서  붙잡혀버린 그가 제대로   아는 것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의 무기력은 이해할  있었다. 그런 인생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은 그를 사회에서 격리시켜놓고  기간 동안 훔치는 것을 못하게 한다. 이것도 납득할  있다. 그런 처벌도 있는 것이다. 아니, 처벌은 본래부터 응보와 격리다. 적어도 그가 처벌받는 기간 동안은 절도 피해 능성이 그만큼 줄지도 모른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이것이다. 신봉원에게는 법과 처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없다. 훔치고, 법의 적용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하고, 다시 훔친다. 이런 일들이 그에게 있어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법은 그를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제 법도 수감생활도 겁내지 않는다. 약간 불편할 뿐이다. 그런데 그 불편함도 점점 덜 느끼고 있다. 바깥의 삶도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법이 그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 원래 법이 이런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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