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오헨로 #2-4

by 정호성

1. 28. 다섯째 날. 시마모토(미마미야 료칸) - 이오키역 - (기차) - 나카무라역 - (기차) - 도사이리노역 - 도사이리노(네스트 호텔)


오늘 일정을 무리하게 잡아서 아침부터 속도를 냈더니, 어제부터 시작된 왼발목 압통이 두드러졌다. 이 통증이 오른발까지 옮겨가길래 이리저리 궁리해보고, 맨발로 걸었을 때 통증이 완화되어서 신발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오키역까지 걷고 나카무라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평소같으면 십오분만에 걸어갈 거리에 있는 몽벨 매장을 삼십분동안 걸어가서 새 신발을 샀다. 그러다보니 예전 여행에서 신발 탓을 하며 제대로 걷지 못했던 아줌마가 생각났다. 그녀는 긴 하이킹 여행을 준비한다며 새 신발을 신었고, 발이 아파서 고생하다가 여행 도중 더 편한 새 신발을 사려하길래 내가 극구 말렸다. 새 신발을 또 사면 그 새 신발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또 필요할 것이고,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새 신발이 필요할 것이고 ... 무한 회귀에 빠져 아마 신발값으로 파산할거라고 하면서. 그 때 그녀는 통증으로 찡그린 얼굴을 피며 낄낄 웃었다.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은 고통의 면제가 아니라 웃음이거나, 그녀가 여행 내내 수 킬로그램을 먹어치웠다고 후회하는 초코렛인지도 모르겠다.


새 신을 신고 터벅터벅 역전 앞으로 돌아오다보니 고통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슬픔, 기쁨, 외로움 이런 감정들은 대부분 이를 느끼기 위해서 사전에 경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사건도 없이, 혹은 성격으로 축적되는 경험도 없이 저런 감정을 막바로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즉각적이다. 그것은 사전에 어떤 경험도, 시간도 필요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이 시간과 경험을 지배한다. 고통이 지속되는 순간들의 연속이 바로 시간을 측정하는 단위가 된다. 10분 동안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픈 시간이 10분인 것이다. 고통이 있는 순간은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몽상, 회고, 무념의 시간은 훌쩍 지나가있다. 그 반면 고통을 느끼는 순간의 시간은 농밀하다. 이 때야말로 시간이 가장 정직하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고통을 느끼면 좀 더 고립되고 외로운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몸 안에 신경과 마음을 집중하니 외부와 더욱 단절되는 것이다. 그 반작용으로 누군가와 연락이 닿고 싶고, 다른 사람이 내 고통에 좀 더 세심해지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지켜보면 잘 알 수 있다. 환자들은 의사나 간호사의 실력에 불만을 갖기보다, 그들이 내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벌컥 화를 낸다. 어떤 환자가 레지던트에게, '내가 의사할께 너가 환자 해봐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불만을 터뜨리는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불만은 더욱 커진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옆에 같이 아픈 사람이 있는 것이다. 동병상련. 어디 얻어맞은 개라도 보이면 먹을거라도 하나 던져줘야겠다.


걷기 여행중에 아프면 서러운 것은 둘째치고, 모든 것이 그 통증에 집중되어서 다른 것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오늘 일지는 대부분 아프다는 것으로 채워져버렸다. 아팠던 얘기를 늘어놓는 여행기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는데, 글쓰는 사람은 고통이 주는 감정의 강렬함때문에 자꾸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도 이 부위는 처음 아파보고, 기분나쁜 통증이기에 자꾸 갸우뚱하게 되고, 걱정이 마음에 켜켜이 스며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이 통증이 내 여행을 좌지우지할지, 그래서 이에 대해서 글쓰게 될지 우려된다.


오늘 숙소 네스트 호텔은 공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방에서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큰 창이 있는 멋진 호텔인데, 식사가 최악이었다. 방에서 식당까지 발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것만도 초인적인 힘이 필요했는데, 주문한 피자를 끝마치기까지는 그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했다. 맥주 나오는데 5분이나 걸렸는데 피자가 나오는데 10분밖에 안걸렸을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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