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아홉번째 날. 오오키노하마(오오키노하마 민박) - 미하라촌(쿠루루사키 민박)
아침, 민박 여주인이 길안내를 해준다며 수백미터 같이 걸었다. 저녁, 아침식사 모두 챙겨주고 점심때 먹을 주먹밥도 싸주고, 아침 6:30에 밥상을 차려달라고 고집하는 할아버지 순례자의 요구도 난처한 얼굴로 들어주고, 저녁 정리하고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하고, 주말, 휴일에는 더 분주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벌 수 있는 돈의 한계가 분명한 삶일텐데, 그리고 나같은 여쭙잖은 오헨로상도 숱하게 보았을텐데, 그녀는 내가 조금만 알아듣고 대부분 못알아듣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보고 일본어 잘하네 잘하네 우기면서, 앞장서서 길안내하며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쫑알거린다. 갑자기 내 뒤로 가더니 내가 걷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남긴다. 갈림길에서는 내가 50미터 정도 걸어서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그 자리에 못박히고 서서 배웅해준다. 육십은 훌쩍 넘은 여주인이, 무뚝뚝하고 덩치좋은 며느리와 둘이(딸같아 보이지 않아서 며느리로 짐작했다) 꾸려나가는 이곳 민박집에서, 분주한 아침시간에 일부러 대문을 벗어나 나와 같이 걷고, 일부러 말을 시키고, 헤어지면서 "잇떼라샤이"(다녀오세요)라고 말하고,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뒤에서 지키고 서있는 것을 보노라면,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이 있다.
아침에 좀 걷고, 발목을 달래려 시모노카에 있는 카페 타유타우에서 두번째 아침식사를 했다. 토스트도 제법 맛났고, 커피도 나쁘지 않았다. 모닝서비스를 다 먹고 커피를 한잔 추가하자 더 괜찮은 커피가 나왔다. 작은 실내, 테이블 세 개, 너무 작아서 차라리 귀엽다고 할만한 화장실. 여주인은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매고, 한때 라틴댄스를 했을법한 피부색에 강인한 눈매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여주인이 커피도 내리고 테이블도 치우고 돈도 받고 설겆이도 하고 모든 것을 다 처리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찍은 듯한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우연히 모은 듯한 소품 몇 가지, 구형 켄우드 시디플레이어가 한 구석에 있었다. 여기저기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카페이다보니 실내장식도 무시할 수 없을테고, 돈계산과 화장실 청소 사이 틈나는대로 실내 구석구석 매만졌을 것이다.
나까지 손님 4명이 전부인 아침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 나도 모르게 그만 "시골 마을에서 카페를 하는 것이 내 "유메"(꿈)라고 여주인에게 말했다. 사실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왠지 그 순간에는 진지하게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바로 손님이 많이 오냐고 묻고 말았다. 그렇지 않다는 그녀의 표정에서 작은 한탄과 묘한 체념이 느껴졌고, 그 표정은 이런 질문을 하는 나에게 꿈이 실현되기 어렵겠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내 꿈에서는 인가드문 마을의 작은 카페에 단골 여럿과 가끔씩 찾아오는 이방인이 끊이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8년을 버틴 카페의 오전장사로 오백엔짜리 모닝서비스 네 개가 전부인 날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나보고 집이 있냐고 물었다. 집이 있으면 거기다 차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인구 수백만 도시에 20층이 넘는 아파트의 한 구석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적당히 얼버무렸다. 나와서 보니 이 카페는 집 옆에 간이창고처럼 붙어있었고, 맞붙어있는 집이 그녀의 집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꿈을 이룬 것일까, 현실에 붙어있는 것일까. 그녀에게는 그 차이가 없는 것일까.
오늘 길은 덤프트럭을 간간히 마주치기는 했지만 깊은 임도를 따라 걷는 것이어서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걸은 도로에 비하면 대단히 유쾌한 길이다. 한 구간에서 길을 막아놓고 포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기에 잠시 멈추어서 대기했다. 통제원이 "오헨로상"이라고 하며 무전을 치자, 포크레인이 작업을 중단하고 길을 내주고, 지나가는 나에게 인부들이 "키오츠케떼"(몸조심하세요)라며 인사해준다. 기분이 으쓱해진다.
오늘 숙소는 쿠루루사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주인 부부의 생활을 잠시 엿본 것 뿐이지만 아주 행복해 보인다. 민가가 몇채 안되고 가까운 스쿠모시까지는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있는 산속이니, 일부러 차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약간 고립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남편의 얼굴은 아주 검은데, 막걸리를 직접 재배한 쌀로 담는다고 하니 쌀농사가 업인 것 같다. 부인 피부는 밝은 편이니 주로 민박일에 치중하나 보다. 부부가 사이좋게 찍은 사진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남편은 활기차고 익살맞고, 부인은 얌전한 듯 하면서도 빠지지 않고 말참견을 곧잘 한다. 식사는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튀김이든 나물이든 두부든 다른 곳과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맛있다. 막걸리 역시 아주 묵직한 신맛이 계속 혀에 남는, 꽤 고급 술맛이었다. 부부가 모두 손이 좋은 것이다.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납득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밭일과 부엌일에 내몰렸을테고, 학교공부를 많이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배움이란 것이 뭔가. 그것이 즐거움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은 가끔가다만 찾아오는 것이고, 그것도 꽤나 지난한 과정을 겪은 다음이다. 이것이 큰 즐거움, 행복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년 쌀농사를 짓고 그 쌀로 막걸리를 빚은 뒤 마셔보고 다른 사람이 맛보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큼 즉각적이고 실감나는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글은 읽고나면 머리가 어지럽지만, 막걸리는 머리를 느긋하게 하지 않는가. 사실 터무니없는 비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볼까. 궁리했던 글이 안써지거나 형편없는 글이 되버린 것과, 일년 공들인 쌀농사를 태풍으로 망쳐버리는 것. 어느 슬픔이 더 큰가. 누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것인가. 사실 이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 개인적인 경험, 이 아저씨같은 정직한 일꾼들은 꽤 봐왔지만, 정직해 보이는 지식인은 많이 보지 못한 경험으로 인해 불공평한 비교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훌륭한 지식인을 몇몇 보기는 했지만, 비율적으로 이들이 적다는 것 자체가 어떤 사실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지적 즐거움과 고심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고, 그 비난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부부같은 일꾼들의 고단함과 울분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을 접하면 부러움과 약간의 존경심이 우러나고, 이로 인해 살며시 이들을 미화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아저씨의 새까만 얼굴에 주름을 더욱 깊어 보이게 하는 웃음이, 이 아주머니의 희멀건 얼굴에 배시시한 웃음이 더 자주 피어나기를 마음속으로 빈다. 다시 맛보고 싶은 이 막걸리와 이 식사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