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오헨로 #2-10

by 정호성

2. 3. 열한번째 날. 스쿠모(호텔 마나베) - 40번 찰소 칸지자이지 - 아이난(이소야민박)


아침부터 잔뜩 흐리더니 비가 제법 왔다. 오늘은 운치있는 산길과 작은 마을길이 번갈아가면서 이어졌고, 군데군데 쉴만한 곳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이 길을 50번 걸었다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과거 일본과 한국은 피가 많이 섞였으니 형제나 다름없고, 일본이 한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것은 잘못이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북통일과 평화 뭐 이런 얘기를 한참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니 약간 독특한 사람이다.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데 2달이 걸리는데, 1년에 5번 정도 이 길을 걷고, 이를 10년째 해왔다는 것이다. 잠자리는 텐트로 노숙을 한다. 내가 초코렛 한조각을 내미니 그는 답례로 사탕을 한봉지 내민다. 내가 이 길을 걷지 않고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이냐고 묻자 선뜻 답하지 못한다. 머뭇거리다가, 아마도 어떤 계기, 계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다고 한다.


나에게 납찰을 주었다. 50번을 돌았으므로 이제 금색을 사용해야 하는데 은색 납찰이 하도 많이 남아서 아직도 이것을 쓴다고 한다. 법명을 적어주었는데, 밑에 영어로 like a cloud라고 해석도 붙여주었다. 구름은 항상 떠돌고 끊임없이 변하고 나타났다가 그리고 사라진다. 자신의 삶도 그렇다고 한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떠돌다가 어느날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가 굳이 죽음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나이에 비해 건강해보이기는 했지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사실 외모는 건실해 보인다. 분명히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허튼짓 한번 하지 않고 '시코토다 시코토'(일이다 일)하며 살아왔을 것 같다. 어느 날, 집 문 밖을 나서 시코쿠로 와서, 그때부터 일년에 열달, 십년째 이 길을 걷고 있을 줄은 그 자신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동안은 건강하기를 바랐다.


차들이 쌩쌩다니는 간선도로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걷는데, 차 한 대가 멈추어 서더니 운전자가 나에게 다가와 페트병에 담긴 호지차 한병을 내밀었다. "오셋타이"(스님에 대한 공양=오헨로상에 대한 접대). 순례자 복장을 잘 갖춘 다른 오헨로상들은 오셋타이를 꽤 받는 것 같은데, 남자 한명이라 경계심을 불러일으켜서인지 순례자 복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는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숙소에서 500엔 깎아주거나 주먹밥 도시락을 받아본 정도다. 그런데 오늘은 운전하던 사람이 일부러 차를 멈추고 위험하게 갓길에 주차를 한 다음 다가와 음료수를 건내준 것이다.


쑥쓰러운 듯이 나에게 다가온 그는 이목구비가 코를 중심으로 모여있어서 약간 고집이 있어 보였고, 동시에 무척 성실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멋적게 웃으니까 눈과 코가 더 모여들었다. 나도 엉거주춤 웃으며 감사인사를 한다. 그도 나도 이런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내민 호지차는 따뜻했다. 본인이 마시려고 조금 전에 샀기 때문에 따뜻한 것이리라. 그 마음씀에 고마웠고 그 우연성에 뭉클했다. 차가 따뜻함을 유지하는 동안 작은 감동이 가슴에 계속 남았다.


저녁 이소야 민박은 좀 색달랐다. 지금까지 민박은 낡았든 새롭든 민박을 위해 설계된 집이었는데, 이곳은 식구가 여럿 살던 가정집에서 혼자 살게 된 어머니가 민박을 치는 것이다. 화장실은 화변기에 의자를 덧씌워 양변기로 개조한 것이고, 방과 방 사이는 얇은 접이식 벽만 세워둔 것이라 옆방의 텔레비전 소리, 전화통화 소리가 한 방에 있는 것처럼 들렸다. 계단 옆에는 오래된 지명수배자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모네풍의 그림이 한 점 걸려있었다. 1층에 거실, 식당, 욕실, 2층에 손님방이 있는데, 어머니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꽤나 힘들 것이다. 어머니가 내 옆방 사람들에게 1층에서 "오후로, 도조"(목욕하세요) 를 수 차례 외쳐도 이들이 핸드폰 게임때문에 듣지 못하자, 계단을 천천히 올라와서 방문을 노크하고 다시 한번 말해야했다. 그 계단에서 울려퍼지는 나지막한 삐걱거림이 어머니의 무릎에서 나는 것 같았고, 나는 옆방놈들이 미워졌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끔 수완도 발휘하는데, 저녁 먹기 전 설핏 잠들었던 내게 밥먹으라고 부르러 온 사람은 옆방 손님이었다.


식당도 보통 민박집처럼 상을 옆쪽으로 길게 늘여뜨려 놓은 것이 아니라, 코타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 한쪽, 옆방 손님들 양쪽, 어머니가 맞은편에 앉아 밥을 떠주고 차도 따라주면서 끊임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식사 중에 나에게 미국 태생의 한국인이 보내온 감사 엽서를 보여주더니, 느닷없이 액자에 담긴 기무라 타쿠라 결혼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영화에서 봤는데,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 진짜냐, 제주도는 아름답더라, 겨울에 얼마나 추우면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냐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저녁밥이 약간 설익었는데, 다른 손님이 그걸 지적하자 어쩔 줄 몰라하면서, 싸구려 밥통인데 아직 못바꿨다, 얼마짜린데 적어도 얼마는 줘야 괜찮은걸 산다, 이런 변명을 한참이나 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밥은 잘 익었다.


아침에 내가 씻으러 주방 옆을 지나자, 어머니는 나를 슬쩍 부르더니 미리 챙겨둔 귤과 바나나가 든 봉지를 건냈다. 아마 나에게만 주는 것이어서 조용하고 은밀한 표정으로 건네주는 것이리라. 배낭을 매고 나와 6,500엔을 계산하는데 오셋타이라고 하며 500엔을 깎아주고, 그걸로 맥주를 사마시라고 했다. 나 역시 처음으로 뭔가를 주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마스크팩을 하나 건내주었다. 어머니는 아주 활기찬 표정으로 바뀌더니, 얼굴에 바르는 순서를 설명하는 나에게 선생님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전수받는 양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같이 현관문을 나서 수십미터를 걸었다. 어머니는 바람의 방향이 어제와 달라서 오늘은 추울것이라 걱정했다. 나는 '겡끼데 쿠다사이'(건강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어머니의 살림과 무릎이 걱정되었다. 갈림길에서 나는 혼자 앞서나갔고 어머니는 저 뒤에서 나를 배웅했다. 수십미터를 더 걸어간 뒤에도 어머니가 아직 뒤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어머니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시 볼 일 없는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잘 봐두려 했던 것 같다. 다른 모든 아들에게도 그러하듯이.


사실 불편하다면 꽤나 불편한 곳이었다. 방음도 전혀 안되고, 화장실도 앉기 꺼려졌고, 목욕탕은 좁고, 식사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바람에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이부자리도 깨끗하다고 하기는 어려웠고, 난방기계도 잘 작동하지 않았다. 방에 찾아와서 노크를 하긴 했지만 문을 벌컥 열고, 이불 잘 덮고 자라고, 추워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다미도 좀 낡았고 찻잔도 깨끗하지 않았다. 그녀 혼자 방을 닦고 요리를 하고 화장실과 욕실을 청소하고 예약 전화를 받고 밥을 떠주고 차를 따라주고 배웅을 하는 곳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 혼자 잠을 청하는 집이다. 혼자 빈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손님들은 하루만에 대부분 떠나가고, 손님없이 낮과 밤을 지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2층으로 가는 그 가파른 계단이 절벽처럼 버겁고, 손님 배웅하는 일이 바람처럼 허망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그때마다 그녀는 좀 더 활기차게 저녁상에서 수다를 떨고, 좀 더 오래 아침 배웅을 할 것이다. 밥을 지나치게 많이 퍼주고, 밥상머리 수다를 젊은이들이 조금 귀찮아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채워 온 것이고, 나는 그 알맹이가 알차고 단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 집은 바라보기만 해도 묘한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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