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게도, 파리에서 한 달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 일이라고는 아침에 '쁘티플란'(파리시내 지도)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아무 방향으로나 걷기 시작해서, 지칠때 커피 한 잔, 배고플 때 빠니니 하나, 공원을 만나면 쉬고, 쉬다 지루하면 다시 걸었다. 이쯤되어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쁘띠플란을 펴서 내가 있는 곳을 가늠한 후, 집 방향으로 그러나 오는 길과는 다른 길로 걸어갔다. 가끔은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태연히 그 뒤에 자리를 잡고 -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것처럼 - 먹고 싶지도 않았던 바게뜨 하나를 일유로에 사서 입에 밀어넣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시테섬과 특히 그 옆에 있는 생 루이섬은 정말 괜찮은 휴식지였다. 세느강변쪽으로 방향을 잡고, 운치있는 골목길, 나폴레옹 시대의 좁은 찻길, 어떻게 차를 뺄 것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되게 주차된 차가 빼곡한 이면도로를 걷고, 마레지구에서 사람들을 이리저리 밀치거나 밀침을 당하면서, 혼자 나지막히 흥얼거리거나 욕하거나 감탄하면서, 세느강까지 와서 짧은 다리를 건너고, 노트르담 대성당에 시선한번 돌리고, 그 곳 인파를 피해 생 루이섬으로 들어와서 벤치에 털썩 앉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파리지앵인가, 하며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찡그린 아랍인과 동지의식을 느끼려고 해봤다.
오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그걸 접하고 있다. 내 젊은 시절의 한 귀퉁이도 그을려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