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다 보니, 각종 필름, 릴리즈셔터, 뽁뽁이, 필터, 후드 등이 들어있는 낡은 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이 상자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 존재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발견한 뒤에도 언제쯤 모아둔 것인지 머리 속을 한참 뒤적였다.
십오년전, 수동 펜탁스카메라를 하나 사서 주말이면 주머니에 사진기를 쑤셔넣고 여기서 한컷 저기서 한컷,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이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감았다. 막상 현상하고 밀착스캔을 해서 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은 별로 없었다. 나는 현상소 아저씨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져보았지만, 그는 아마 나를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노출도 안맞고 구도도 별로고. 어느 날인가 과다 노출된 컷이 너무 많자, 이거 노출계가 고장난거 아닐까요, 라고 내가 말을 꺼냈는데 그가 마지못해서 맞장구쳐 주었지만 우리 둘다 카메라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주머니 속에서 셔터를 만지작거리며 눈 앞의 세상을 구획지어서 바라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상과 뒷모습을 살피고, 평범한 길가에서라도 의미심장한 순간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쏘다닌 시간들이 지금은 새삼 소중하게, 약간 풋풋하게 느껴진다. 이 박스가 없었다면, 그 당시 우쭐함과 의기소침함도, 지금 돌아보는 그때의 소중함과 풋풋함도 느끼지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