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정호성

이사는 여러번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오 년 넘게 정붙이고 살았던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이곳으로 처음 이사올 때는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장소로 온 것이었지만, 살다보니 그럭저럭 정이 붙게 되었고, 이제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더욱이 새 집 근처의 타르가 짙게 발린 도로와 자라지 않은 묘묙들을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사 전날인 오늘 어둑해질 무렵, 근처에 있는 대학교 교정을 몇바퀴 조깅하다가 노을이 서편 하늘에 걸려서 건물을 물들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약간 시큰해졌다. 모교는 아니지만 정이 많이 들었고, 제법 괜찮은 산책로 - 벚꽃과 소나무가 마주보고 있고, 난해한 철학자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 도 있다. 집에서 이곳까지는 걸어서 십 분, 아침에도 저녁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앞으로는 마음을 먹어야만 올 수 있을 것 같다.


짐을 싸는 것도 지난한 과정이었다. 무엇을 버릴지 택하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센티멘탈 벨류'가 붙은 물건들. 나는 책이든 음악이든 그 전달도구(가령 책이나 cd)는 중요치 않게 여기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에이포 한장에 두면이 인쇄되게 하여 읽어도 족하고, 중요한 것은 그 전달된 내용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읽은 뒤의 나 마이너스 읽기 전의 나)의 문제로 한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감정이 부착된 물건들, 가령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카메라, 누래진 어떤 페스티벌의 기념 티셔츠 등은, 그 물건이 단순한 전달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가령 고장나지 않은 같은 모델 카메라나 동일한 것이 인쇄된 깨끗한 티셔츠를 나에게 가져온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감정은 '바로 그 물건'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고, 그 물건이 사라진다면 그 감정이 사라질(기억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무엇을 버려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달 전, 갑자기 청소를 하시겠다며 커다란 마대자루에 이런저런 것들을 주워담으셨다. 일부는 태웠고 일부는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그 물건들은 당신의 옷, 양말, 노트들이었다. 잊기 위한 것이었을까, 잊혀지기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지금 짐을 정리하는 마음보다 백배는 쓸쓸하고 천배는 외로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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