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호성 Jun 17. 2019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옴 진리교 사태 이후 피해자들을 일일히 만나며 인터뷰하고 정리한 논픽션이다. 읽고나니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중 거의 몸을 못쓰게 되었다가 회복하는 중인 여동생과 그녀를 돌보는 오빠 편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나 자신이 힘이 좀 떨어졌다고 느껴지면 가끔 이 부분을 찾아 읽는다. 아래는 그 중 일부.



   

"오른손을 움직여볼래요?" 나는 시즈코 씨에게 말했다.

시즈코 씨는 오른쪽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오른손은 천천히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천천히 오므렸다가 편다.

"괜찮다면 내 손을 한번 잡아보세요."

"좋아요."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녀의 작은 손바닥 - 마치 어린아이의 손처럼 작다 - 에 나의 오른쪽 손가락 네 개를 올려놓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마치 잠들려는 꽃잎처럼 조용히 오므라들었다. 따스하고 포근한 젊은 여성의 손가락이다. 손가락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그녀는 잠시 내 손가락을 힘껏 감싸고 있었다. 심부름을 가는 어린아이가 '중요한 물건'을 꼭 쥐듯이. 거기에서 또렷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명백히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다. 물론 나를 향해 뭔가를 갈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저편에 있는 '다른 것'을 향한 갈구다. 그렇지만 그 '다른 것'은 빙글 돌아서 나를 향해 다가올 그런 것이다. 알쏭달쏭하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불현듯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필시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 중요한 무엇인가가,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이 일시적으로 그녀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무엇인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그녀 속 어떤 장소에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조용히 전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언제까지고 내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고마워요."하고 내가 말하자 조용히 내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


병원을 떠나면서 다시 한번 시즈코 씨에게 내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잡아줄래요?"하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네."그녀는 또렷하게 말했다.

휠체어 곁에 서서 손을 내밀자 그녀는 아까보다 더 세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까보다 더 강한 의지로 뭔가를 전하려는 듯 내 손을 오래오래 잡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세게 내 손을 잡아준 것은 정말 오랫만의 일이었다.

그 감촉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 손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마치 겨울 오후의 따스한 햇살 속에 오래 앉아 있었던 듯한 기억처럼. 그 온기는 아직도 희미하게 내 손에 남아 있다. 앞으로도 오래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면서도 그 온기의 힘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써야 할 것이 그 온기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녀가 보고 있던 '다른 것'을 어떻게든 나의 것으로 느껴보려고 애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그러나 거기에는 벽이 있을 뿐이다.

그날 저녁 병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용기를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었다.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영화 - "로켓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