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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Jun 19. 2019

책 - "노후파산"

꽤나 섬뜩한 책이다. NHK 저널리스트들이 도쿄 등지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노인들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하루 식비를 1000원 (1000엔이 아니다)으로 제한하면서 어떻게든지 저축한 돈을 쓰지 않으려는 노인, 80대 노부부가 자신들의 연금으로 실직한 50대의 아들을 먹여살리는 가정, 몸이 아픈데도 의사가 입원을 권유하자 아예 병원에 발길을 끊은 병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텔레비전도 못보고 하루 종일 라디오에 의지하는 사람 등.


그들은 젊은 시절에 흥청망청했거나 아주 운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이 책은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빈민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주는데, 사실 별로 보여줄 것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부터 국민연금과 후생연금(일본에서 국민연금에 추가되는 연금. 5인 이상 사업장 의무가입)만으로는  혼자 노후를 버티기 어렵다. 저축해 놓은 돈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반면에 의료비 지출이 늘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돌봄서비스 비용도 나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전기세도 점심값도 아끼게 된다. 그리고 다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폐지줍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키보다도 높게 폐지가 쌓인 리어카를 도로 역방향으로 끌고있는 노인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지고, 내 어머니가 이러한 처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아무리 교통을 방해해도, 운전자들은 클랙션한번 울리지 않는다. 큰 버스도 이 작은 리어카를 살살 피해가는데, 멀리서 보면 도로가 출렁이는 것 같다. 그 표정 앞에서는 성격급한 운전자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들의 얼굴을 관찰하는데, 주로 둘중에 하나다. 어떠한 감정도 없어 보이거나, 모든 고통과 절망이 다 드러나 있거나.


답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 혹은 성토에 대해.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이 가장 필요한 순간일까, 아니면 가장 무력한 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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