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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Jun 25. 2019

마이클 길모어 -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얼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었다. 가볍고 유쾌한 내용이어서, 아껴 읽으려고 했는데도 며칠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 중 하루키가 자신이 번역한 책을 소개했는데, 바로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이다. 원저자 마이클 길모어는 살인마 게리 길모어의 동생으로, 게리 길모어가 어떻게 살인마가 되었는지, 그가 살인을 하고 자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것이 자신들의 가족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파헤친다. (게리 길모어는 유타주에서 사형을 집행해달라고 - 내 심장을 향해 쏴달라고 - 청원하였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전 10년 동안 유타주에서 사형은 집행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키가 소개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사형으로부터 약 이십 년 후, 그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가 가슴속에 묻어온 모든 사실을 책으로 썼다. 게리 길모어는 왜 푼돈때문에 죄 없는 사람 둘을 죽이게 되었나? 알고 보니 그 이유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서운 가족사가 있었다. 마이클이 그것을 남김없이 말하기로 결심할 때까지, 혹은 실제로 말할 때까지는 그렇게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길모어가에 일종의 원한이 들씌워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기구한 역사를 관통해 외가와 친가 양쪽 혈통을 타고 흘러들어온 '악한 것'이 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인간이다. 사령은 보기에 무서울지언정 결국 살아있는 인간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리가 그 트라우마 = 사령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탈출할 길은 스스로를 폭력적으로 말살하는 것뿐이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생존자인 마이클은 아이를 가지지 않음으로써 이 원한 맺힌 핏줄의 존속을 끝내려 한다. 그러나 그 뒤에 몇 가지 놀라운 반전이 기다린다.


이 년 가까이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엾은 길모어가의 모든 사람을 위해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책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 많지 않다."




번역본 기준 700페이지가 약간 안되는 책인데, 금세 읽었다. 저자 마이클은 자기 형제들 중 게리, 게일렌이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맏형 프랭키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왔는지에 관하여, 어떤 때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어떤 때는 가해 혹은 피해의 당사자로 자기들의 가족사를 서술한다. 게리 길모어가 사람을 죽인 것,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도 죽인 것은, 그들의 부모가 이들을 양육한 환경에서는 거의 불가피하게 느껴진다. 저자 마이클은 처절하게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저주한다.


"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증오한다. 말쑥한 차림으로 쇼핑을 하면서 몰려다니는 가족들을 보건, 친구의 가족 모임이나 집안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혹은 친구들 집을 방문해 그 가족을 보면, 난 어김없이 그들에게 화가 난다.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난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는 질투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소위 가족 공동의 선을 내세워 여전히 아이들에게, 이미 다 큰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복종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내 항변이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모질게 비난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조금도 증오심이나 한을 품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더 미워해야 하느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 요즘 들어서는 그분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내 마음은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 부모님이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프랭크 길모어와 베시 브라운 - 그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들이었던가.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 그것은 정말로 통탄할 일이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목덜미가 서늘해지는것 같았다. 잠시 방 밖, 어둠을 바라보았다. 악령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평생 악령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오거나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악령을 보낸 자는 다름아닌 자기 부모, 형제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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